한중수교공동성명 문안작업은 1992년 6월21일 서울 워커힐호텔 VIP빌라에서 개최된 동해사업 제3차 예비회담에서 사실상 모두 타결되었다. 수교의 가장 핵심적인 6개 항을 공동성명에 담았다.
제1항과 2항에서 한중은 양국 국민의 이익과 염원에 부응하여 상호 승인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결정하고 항구적인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에 합의했다.
우리측은 '과거의 비정상적인 관계와 일시적으로 불행했던 일들을 극복하고'라는 문구를-특히 한국전쟁에서 우리 국민이 입은 막대한 피해 등을 고려해-포함시키려 했으나 국교가 열리는 희망찬 문서에 그림자를 드리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삭제하는데 동의했다.
한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하고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소위 '하나의 중국원칙'도 반영됐다.
이는 중국이 예외 없이 요구하는 수교의 유일한 전제조건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더 엄격하게 기술하는 여러 표현을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우리는 제2차 예비회담 때 제시한 최초의 우리 원안에서 단어 하나 즉,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인지' 대신 '존중'으로 고치고 더 이상 양보하지 않았다.
대만과의 관계에서는 한국이 최고 수준의 비공식관계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수교문서 반영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이 대만과 최고수준의 비공식 관계를 가질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중국측에 인식시켰다.
무엇보다 공동성명 제5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5항은 '중국은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통일문제를 한국이 지지하는데 대하여 '한반도의 평화적 자주적 통일'에 대한 중국의 확실한 지지와 한국 입장의 '존중'을 대상(quid pro quo)으로 확보한 조항이다.
중국은 한국전에 참전, 우리의 통일을 방해한 사실이 있고 또 공식적으로 북한의 적화통일정책을 지지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한반도 통일외교에 있어 주변 4강의 지지가 필수적이고 특히 중국의 확고한 지지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나는 교섭임무를 맡으면서부터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중국의 지지 입장을 공식 수교문서에 명확히 천명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제1차 예비회담 때부터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이 문제를 표명한 후 제2차 예비회담 때 우리가 제기한 6가지 사항 중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강조, 중국측의 동의를 얻었다. 우리의 통일외교에 있어 원대한 포석의 하나로 우리 입장이 공동성명에 잘 반영됐다.
바로 이 공동성명의 한반도 통일조항이 이후 중국의 공식입장으로 정립되어 사실상 또는 대외적으로 천명되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 통일지지 조항을 수교공동성명에 포함시킨 것은 가장 큰 성과로 평가 받고 싶다.
제4항은 양국 간 수교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을 천명한 선언적 내용이다. 우리는 원래 한반도의 비핵화문제도 공동성명에 포함시키려 했다. 그러나 중국측은 확고한 비핵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공동성명에는 수교와 직결된 가장 핵심적 문제만 포함시키자고 제안, 양측이 동의했다.
정상회담 건은 우리측 내부에서 가장 신경전을 많이 한 문제로 김종휘 수석이 수교의 가장 우선과제로 취급한 반면, 이상옥 장관은 수교에 최우선을 두되 수교가 달성되면 그 다음 과제로 삼고 나에게도 본말이 전도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렸다.
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성사시키려다 대가를 치를 것도 우려했다. 1년 전 한소(韓蘇)수교교섭에서 정상간 수교방식을 서두르다가 청와대 팀이 비밀 막후교섭에서 30억 달러의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 전례를 염두에 두었다. 중국과의 수교교섭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아무런 전제조건 없는 수교' 원칙을 세웠다.
6월19일 김석우 국장이 마지막으로 가져온 장관지시(구두훈령)는 정상회담과 각종 협정 및 비핵화문제를 공동성명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대표단의 재량권을 넓혀주었다.
나는 정상회담을 공동성명에 포함하도록 강력히 주장했지만 중국측은 정상회담 추진을 약속하는 대신 공동성명에 포함하는 것은 중국의 관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제6항에서는 양국 정부가 상대방 수도에 대사관을 개설하고 이른 시일 내에 대사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이 공동성명 문안합의로 한중수교의 내용은 사실상 확정됐고 이제 그 절차만 남겼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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