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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학문 융합'/ "인문학 소양 갖춘 공대생은 왜 못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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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학문 융합'/ "인문학 소양 갖춘 공대생은 왜 못키우나"

입력
2007.09.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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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대 공대 연구동내 한 강의실. ‘공학 문제 해결과 창의적 사고’ 제목의 세미나 수업이 한창이다. 교수는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내도록 질문을 유도한다. 단순한 문제 풀이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10명 남짓한 1학년 수강생은 3조로 나눠 ‘소변기에 내리는 물을 어떻게 절약할 수 있는가’ ‘교내 전단지 공해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묘수를 짜내야 한다. 재료공학과의 한 교수는 “공대생은 애매하고 답이 명확치 않은 문제에 약하다”며 “인문학적 소양과 창의적 사고를 갖췄을 때 비로소 완전한 공학도가 된다”고 강조했다.

대학에 부는 '융합' '통섭' 바람

요즘 대학의 화두는 ‘학문 간 융합’이다. 대학이 사회와 소통하려면 학문 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탓이다. 특히 최근 위기를 맞고 있는 이공계 분야에 융합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최근 부임한 강태진 서울대 공대 학장은 이공계 위기론과 관련, “융합과 통섭의 시대를 맞아 리더십을 가진 이공계 지도자를 육성해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실 학문 융합은 대학 발전계획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화여대의 경우 지난해 9월 통섭원을 만들어 학문 간 벽을 허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통섭(統攝)이란 ‘서로 다른 것을 아우른다’는 개념이다. 대학에서는 이를 ‘학문 접목’을 통해 기존 학문 체계의 고립화를 극복한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가령 성형외과 의사가 미학을 연구하고, 제품 디자이너가 시(詩)의 은유를 배울 때 더 완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연세대는 신촌캠퍼스에 융복합프로그램을 개설하고 2010년 개교 예정인 송도캠퍼스에 관련 연구소를 만들 예정이다. 서울대 역시 3월 장기발전계획을 통해 융합분야에 참여하는 교수나 연구원의 교육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차후 세계적 수준의 융합분야 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내에 범학문통합연구소를 내년에 문을 열어 인문 자연과학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중심 기구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학생들, "부담 크고 필요성 덜 느껴"

대학들은 저마다 연계전공제(학부)와 대학원 협동과정(석ㆍ박사)제도를 통해 학문 융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갈 길은 한참 멀다. 학부생들은 단순히 ‘취업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 ‘부담만 된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연계전공을 외면하고 있다.

연세대는 2000년 1학기 8개 전공을 도입하며 이 제도를 시작했지만 올해 1학기 이수 학생은 143명에 불과하다. 송예슬(21ㆍ연세대 문헌정보학과)씨는 “연계전공 이수학점이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복수전공을 하면 본 전공과 제2전공이 각각 36학점씩인데 연계전공을 하게 되면 본 전공 57학점을 다 채워야 하니 같은 조건이라면 연계전공보다는 복수전공을 한다는 뜻이다.

연계전공에 대한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인식도 매우 낮은 편이다. 본보가 대졸 취업준비생들이 비교적 선호하는 11개 기업(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커뮤니케이션즈 한국IBM LG패션 넥슨 한국전력 한국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NC소프트) 인사팀에 문의한 결과 관련자 모두 용어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아예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산점을 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대학원 협동과정은 학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 과정엔 하나의 학문적 테마를 놓고 겉으로는 이질적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교수들이 참여하는 게 보통이다. 예를 들면 의료법ㆍ윤리학 협동과정(연세대)의 경우 법학 의학 철학 보건학 이학 전공 교수들이 함께 참가하는 식이다

전임교수 확보 시급

융합학문 분야에서 오랫동안 몸 담아 온 학자들은 ‘학문 간 벽 허물기’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학문 간 융합의 필요성에 대한 학계 전반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취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려대 비교문학ㆍ비교문화 협동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정우봉 국문과 교수는 “우리 학계는 아직 학문 간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 경계(警戒)를 하고 있다”며 학과 중심의 강한 연구풍토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전임 교수 확보도 시급하다. 단순히 구색갖추기 식으로 ‘이 학과에서 이 교수 빼오고, 저 학과에서 저 교수 빼오는’ 식으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학문 발전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홍성욱 생명과학부 교수는 “학과가 소속 교수의 협동과정 겸임교수 활동을 얼마나 인정해주고, 밀어주냐에 따라 겸임교수 섭외가 쉬워지기도 하고 어려워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 주요 대학들의 학문융합 추진 현황

▦고려대= 2004년 교과과정 개편 통해 연계전공 실시. 학부생 이중전공 의무화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융복합 프로그램 개설. 송도캠퍼스(2010년 개교 예정) 융복합 관련 연구소 개설 예정

▦이화여대= 5월 학문융합 전담 스크랜튼 대학 설립(문화연구, 디지털인문학, 사회과학심화, 생명과 과학기술 4개 분야). 지난해 9월 통섭원 개설. 파주 새 캠퍼스 화두를 '학문융합' 으로 결정

▦서울대= 2008년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내 범학문통합연구소 개설.

(장기발전계획) 학문융합분야 참여 교수나 연구원 인사 고과 반영, 세계적 수준의 융합분야 연구소 설립 추진

박원기기자 one@hk.co.kr김혜경(이화여대 국문과 4년)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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