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변호사 힐러리 클린턴이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미국인들은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는 힐러리에게 반감을 가졌다. 그때 시작된 반 힐러리 정서는 힐러리가 차기 대통령 도전자 중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는 현재까지도 이어질 정도다.
하지만 요즘 미국 퍼스트레이디 후보들의 행보는 전보다 훨씬 과감해졌다. 미 시사주간 타임 최신호는 미 대선주자들의 부인들이 라이벌을 강하게 비판하거나 남편의 약점을 적극적으로 감싸면서 사실상 러닝메이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민주당 대선주자인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의 부인 엘리자베스 에드워즈는 퍼스트레이디 후보 중 가장 적극적이고 저돌적이다. 유권자들에게 남편의 공약을 설명할 수 있다는 데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뉴 햄프셔에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대략 12만7,000명), 이 주의 교사 봉급 수준은 미국 전체에서 몇 위인지(24위) 등 상세한 숫자까지 외우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상대 후보들에 대해 날선 공격을 가하는 ‘저격수’ 역할도 서슴지 않는다. 힐러리가 “사사건건 불화를 일으키고 본선 경쟁력이 없다”고 폄하하고 이라크전을 반대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배럭 오바마에게는 “성인군자인 척한다”고 쏘아 붙인다. “우리는 존(남편)을 흑인이나 여성으로 만들 수 없다”면서 남편보다 오바마나 힐러리가 더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이유는 인종이나 성별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덜 전면에 나서고 있다. 타임은 힐러리 진영이 클린턴을 마치 ‘전략 핵무기’처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고 평했다. 클린턴도 “지금은 민주당에 매우 유리한 시기”라면서 “우리 내부에서 적대적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자금 모금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서 알 수 있듯 힐러리만큼 배우자의 덕을 톡톡히 보는 대선주자도 드물다.
배럭 오바마의 부인 미셸은 자신만이 아는 남편의 소탈한 점을 언론에 노출시키며 지지자들에게 ‘신’처럼 보이는 남편의 이미지를 관리한다. 잡지 <글래머> 와의 인터뷰에서 미셸은 남편이 코를 골고 냄새가 나서 딸들이 아빠와 한 침대에서 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지자들 앞에서 남편이 더러운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두는 버릇이 있다고 말하거나 금연하겠다는 약속 하에 경선 출마를 허용했는데 혹시라도 내가 안 보는 동안 약속을 어기는지 감시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래머>
민주당의 퍼스트레이디 후보들과는 달리 공화당 대선주자들의 부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역할 모델로 로라 부시(조지 W 부시 대통령 부인)나 낸시 레이건(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인) 같은 전통적 퍼스트레이디를 꼽는다. 미트 롬니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의 부인 앤은 고등학교 때 첫사랑과 결혼해 가정에서 뜨개질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완벽한 주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민주당 대선주자뿐 아니라 두세 번씩 결혼한 전력이 있는 같은 공화당 내 대선주자와의 차별점을 부각하고 모르몬교도인 남편의 약점을 감싸기 위한 전략이다. 실제 앤은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섯 아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프레드 톰슨의 젊은 아내 제리도 남편이 대권에 도전하도록 설득한 것은 물론, 그의 선거운동 전략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단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세 번째 부인 주디스는 언론이 자신에 대해 보도함으로써 오히려 남편의 명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뒤에서 조용히 지지하는”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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