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로맨스만큼 영화가 사랑하는 것은 전쟁이다. 인간의 실존을 덮고 있는 가식을 벗겨 내는 데 전쟁보다 좋은 소재는 없다. 피와 땀과 죽음의 공포가 섞여 입 안에서 단내를 낼 때, 인간은 수식이 사라진 맨 얼굴을 드러낸다. 핏빛 풍경 속에서 원초적 인간을 목격하는 것, 그것이 전쟁영화의 매력이다.
13일 개봉한 <제9중대> 에는 그런 전쟁의 질감이 살아 있다. 표도르 본다르추크 감독은 <전쟁과 평화> (1967년)를 연출한 아버지(세르게이 본다르추크)로부터 전쟁의 본질을 포착하는 유전자를 물려 받았다. 그는 전쟁의 명분을 미화하지도, 그 속의 휴머니즘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블록버스터급의 재현을 통해 그가 조형해 낸 전쟁의 본질은, 근원적 허무와 그 허무 앞에 절망하는 인간의 나약함이다. 전쟁과> 제9중대>
영화의 배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1988년 크렘린의 지도자들은 이미 전쟁을 끝낼 명분을 찾고 있었지만 전선에는 여전히 더운 피가 필요했다. 영화는 러닝타임의 절반을 뚝 잘라, 평범한 젊은이들이 ‘병력’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머지 절반은 전선에 배치된 그 병력이 소멸되는 모습을 그린다. 이 구성은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 과 상당히 흡사하다. 전반부의 전우애 형성과정은 후반부에서 쌓여가는 시체더미의 두께와 대칭을 이룬다. 풀>
신병들이 폭압적인 군대생리에 익숙해질 무렵, 그들을 태운 수송기는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한다. 배치된 곳은 3234고지의 제9중대. 수송부대를 보호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죽음의 그림자가 늘 가까이 있기에, 이들의 일상은 오히려 권태롭다. 본부와 무선이 끊겼지만 부대원들은 조촐한 새해파티를 연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소박한 꿈에 취해 쓰러진 그들에게 유령처럼 무자헤딘의 공격이 들이닥친다.
영화는 전투에서 살아 남은 병사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대부분 그 당시의 사정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가 목숨 바쳐 지키고자 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2년 뒤에 사라질 것을 몰랐고, 더 이상 강대국에 포함되지 않을 것도 몰랐다… 우리는 그 뒤로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위대한 군대가 우리를 잊을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제9중대, 우리는 승리했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플래툰> 과 닮았다. 명분 없는 전쟁, 그 속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전쟁의 스펙터클보다는 캐릭터의 내면에 집중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쌍을 이룬다. 무대를 베트남의 밀림에서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산악지대로 옮겨왔을 뿐, 냉전시대 침략의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쌍둥이 같다. 플래툰>
본다르추크 감독은 “아무도 어린 소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끔찍한 행위를 기억하지 않는다”며 “내 관심은 정치가 아니라, 전장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했던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전쟁에 관한 그리고 내가 겪어온 세대에 관한 거대한 스케일의 메이저 영화”인 <제9중대> 는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아픈 되새김질이다. 제9중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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