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10년 전 대선에서 권영길씨에게 투표했다. 차마 전두환 군사정권의 맥을 잇는 한나라당 이회창씨를 지지할 수는 없었다. 당시 여론조사는 김대중씨가 단연 앞서가고 있었으나, 여러 가지로 말을 바꿔가며 세 번째 나선 그의 권력에 대한 집요한 욕망도 싫었다.
내가 표를 준다 해도 권영길씨가 당선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그가 이끌던 언론노조 운동에 동참한 처지에 마음의 빚도 있고, 진보적 정당을 격려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 권영길씨는 이번 대선에, 김대중씨가 그랬듯이, 세 번째로 도전할 채비를 하고 있다. 그는 심상정씨와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쟁에서 결선투표를 벌이고 있으며, 오늘(15일) 오후 결과가 발표된다. 권영길씨가 1차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의 지지를 받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민노당의 정파는 크게 두 개로 나뉜다. 1980년대 이후 민족해방파(NL)와 민중민주파(PD)로 분류되던 정파가, 이제는 흔히 자주파와 평등파로 불린다. 자주파는 민족문제를, 평등파는 계급문제를 중시한다고 한다.
▦ 신문 인터뷰를 보면, 권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이번에 그가 또 다시 출마한 까닭은 앞의 두 번 출마 이상의 성과, 즉 집권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 후보는 민노당의 과감한 혁신과 변화를 바라는 열망이 강력한 심상정 바람(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이번 경선이 권영길로 대표되는 '과거'와, 심상정으로 대표되는 '미래'의 싸움이라고도 해석했다. 대결의식은 치열해도, 그 경선은 결선에 이르는 동안 어느 당보다도 모범적이고 깨끗했다는 점이 칭찬을 받고 있다.
▦ 그러나 여론조사를 보면 누가 대선 후보가 돼도 집권은 꿈꾸기 힘들다. 차라리 이를 인정하고, 경선을 당의 내적 변화를 이루는 계기로 삼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곤충을 예로 들면, 그들의 외골격을 이루는 딱딱한 키틴질은 방어와 현상 유지에는 유리하지만, 성장에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요소가 되어 왔다. 딱딱한 외피 때문에 장구한 세월 진화를 못해온 것이다. 민노당도 때 늦은 정파 대결 등 구각을 깨뜨리고, 이 기회에 성충처럼 화사하게 탈바꿈해야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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