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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범·일본인 관동군도 日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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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범·일본인 관동군도 日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

입력
2007.09.1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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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의 전범과 옛 일본 관동군 병사가 한자리에 앉았다. 가해자가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에 철저히 이용당한 희생자의 신분으로서다.

역사 NGO 세계대회 행사의 일환으로 15일 열리는 ‘가해와 피해 세미나’ 의 증언자로 나서는 조선인 BC급 전범 출신 이학래(82)씨와 일본 관동군 출신으로 종전 후 중앙아시아에 억류돼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이케다 고이치(池田幸一ㆍ86)씨.

이들은 세미나에 앞서 13일 기자회견을 갖고 “길고 먼 길이 되겠지만 일본정부가 모든 전쟁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주는 성의를 보여야 동아시아의 화해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전남 보성 출신으로 1942년 일본인 군속으로 자원해 남방전선의 연합군수용소에서 포로감시 업무를 맡았던 이씨는 종전 후 ‘전범’으로 몰려 교수형 판결을 받았고, 10년형으로 감형돼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석방 뒤에도 조국에서는 죄인으로 몰리고, 일본에서는 외국인 취급을 당하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풀려난 뒤 같은 처지의 한국인들을 규합해 ‘동진회’ 를 만들고 50년 이상 일본정부에 공식적인 보상을 요청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50명에 달했던 회원중 현재 생존해 있는 이는 9명. 모두 70, 80대의 고령이다. “입법을 통해 보상문제를 해결하라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99년 12월)이 내려진 뒤 8년째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법안취지에만 동의할 뿐 발의를 위한 서명은 해주지 않습니다. 혹시 자민당 정권이 바뀌면 달라질까 한 가닥 기대를 가져봅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징병을 피해 만주로 건너갔던 이케다씨의 운명도 기구하다. 종전을 불과 며칠 앞둔 45년 8월 1일 관동군에 징집돼, 단 2주간 군생활을 했지만 그의 인생은 거기서 요동친다.

귀향 대신 구 소련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끌려가 48년 9월 귀국 때까지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하루 10시간 이상 탄광작업, 수용소 건축 등에 동원됐고 부족한 배급 탓에 뱀, 개구리, 거북이 등으로 연명하기 일쑤였다.

그는 “스탈린이 우리를 인질로 잡아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얻어내려 했던 것 같다”며 “소련군에 끌려갔다는 이유로 귀국한 뒤 사회에서는 ‘빨갱이’ 취급을 받았고 일본정부는 소련과 전쟁 때 책임은 서로 묻지 않기로 합의했다며 철저히 외면당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법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일본내 소련 억류자들의 모임인 전국억류자협회 회원은 1,000여명 정도.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지만 2004년 이들도 패소했다. 대신 일본정부는 현금대신 1명당 10만엔 상당의 여행상품권을 지급하며 ‘입막음’ 을 하려하고 있다.

석방후 일본정부로부터 충분한 물질적 보상을 받은 미군 억류 옛 일본군 포로들과 비교하면 분노를 감출 수 없지만, 그는 이제 자신의 불행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돈 몇 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는 평화를 위한 전쟁피해자간의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나의 피해도 억울하지만, 식민지출신으로 함께 억류됐던 관동군 출신 한국인들에게 송구스럽다”며 “두 번 다시 이같이 바보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케다씨는 이날 동료들과 정부로부터 받은 여행상품권을 팔아 한국인 억류단체인 ‘시베리아 삭풍회’에 위로금을 전달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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