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행보가 심심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후보를 향한 국민들의 눈과 귀가 심심하다. 정치부 기자인 탓에 주변에서 "이 후보는 요즘 뭐하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아" 라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사람들이 이 후보에게 심심함을 느끼는 것은 그가 지난달 20일 천신만고 끝에 박근혜 전 대표를 누르고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된 뒤 뭔가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확실한 '당선 프리미엄'이 있었던 황금시간을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다.
사람들이 이 후보에게 보고 싶어했던 것은 아마 정적을 달래며 끌어안고 가는 '정치인'으로서 리더십과 '이명박 브랜드'의 당ㆍ국가 개혁 프로그램일 것이다. 전자는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력의 문제이고, 둘째는 이명박식 미래 비전, 즉 콘텐츠의 문제이다.
다시 이 후보의 수락연설문을 찾아내 끄집어 봤다. 비전도, 메시지도, 감동도 모자랐던, 또 너무 짧아 듣는 사람이 어리둥절했던 그 연설문이다. 한 독설가는 "선대본부에 사람이 넘친다는데 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했나.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의 알맹이 없는 후보수락연설을 듣고 있노라니 (로드맵만 그린 현 정권처럼) 앞으로 5년도 매일 그림만 그리다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고 꼬집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후보는 본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당선 이후 3주일 동안 '그림'만 그렸다. 아직 당직 인선도 마무리 짓지 못했고, 시도지부장 선거도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심지어 '슬림화'했다는 비서실 조차 아직 채 당에 입주가 끝나지 안았다. 최근의 행보에선 이 후보 특유의 추진력도, 효율성도 이상하리만큼 실종됐다. 이 후보가 만들려는 한나라당이 어떤 모습인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후보자로서의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D-100 기자회견에서 내세웠던 '신발전 체제론'도 좋은 말만 모아 놓은 '담론' 수준일 뿐 구체성도 감동도 없다. '실용주의'라는 다소 모호한 철학이 만병통치약처럼 콘텐츠를 대신하고 있다.
연설문에서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것은 "덧셈의 정치를 하겠다"는 대목이었는데 설명하기 피곤할 정도로 '뺄셈의 정치'쪽으로 가고 있다. 이 후보측이 인사를 독식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박 전 대표측은 세력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후보는 기회 있을 때마다 박 전 대표와의 화합을 강조하고, 인사이야기가 나오면 "내 머리 속에선 누구 편인지 지웠고, 경선이 끝난 지가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인사이야기를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일축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아직도 인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본질적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이 후보는 지금 시험을 치르고 있다. 한번도 제대로 테스트 받아보지 못한 '정치력'을 국민들 앞에서 입증해 보여야 한다. 정치력과는 담을 쌓은 노 대통령에게 느낀 피로감을 또다시 느낀다면 이는 이 후보에겐 재앙이다.
심심함의 근원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당 안팎에선 "당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다","벌써 대세론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아마도 지금 이 후보에겐 후보 자신의 '신발전'이 필요한 것 같다.
이태희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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