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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번역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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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번역사 산책

입력
2007.09.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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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유미 / 궁리정상회담의 통역 해프닝… '부실한 미녀'와 말의 무게

노무현, 부시 대통령의 시드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안보체제에 관한 대화가 미국측 통역의 잘못으로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을 보자니, 이 책 <번역사 산책> 이 떠오른다. 번역은 글을, 통역은 말을 옮기는 것이라는데 차이가 있지만, 번역이든 통역이든 한 문화를 다른 문화로 전달하는 것이다.

<번역사 산책> 에는 17세기 프랑스에서 문명논쟁으로까지 번진 ‘벨 앵피델(부실한 미녀)’ 논쟁이 소개돼 있다. 부실한 미녀란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원문에 충실하지도 않고 날림인 번역은 아예 부실한 추녀이겠다.

회담에 임했던 한미 두 정상의 속내를 논외로 한다면,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날림으로 옮긴 통역은 부실한 추녀 꼴이다. 사실 통역에서는 ‘미녀’도 그리 필요치 않다. 부실하지 않아야 할 뿐이다.

‘번역의 나라’라 할 만한 일본의 번역가ㆍ작가인 쓰지 유미가 쓴 <번역사 산책> 은 고대 이집트부터 중세 아랍을 거쳐 1990년대 유럽까지, ‘언어를 매만지는 예술가’로서의 번역가들에 얽힌 일화를 엮은 흥미롭고도 알찬 책으로 기억된다. 앙드레 지드가 셰익스피어의 <햄릿> 을 프랑스어로 번역출판하는데 22년의 세월을 들인 일 등 특히 프랑스의 역사와 번역가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소개돼 있다.

저 난해하다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발레리 라르보가 남긴 번역의 정의는 유명하다. “번역은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저울의 한쪽에 저자의 말을 얹고 또 한쪽에는 번역어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하지만 저울에 올리는 것은 사전에 정의된 말이 아니라 저자의 말이다. 저울에는 그 생명의 무게가 얹힌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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