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에 납치됐다 풀려난 한국인 중 일부가 총으로 살해 위협을 받으며 구타당하거나 개종을 강요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피랍자 21명은 12일 그동안 치료를 받아온 안양샘병원에서 퇴원을 앞두고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고통스러웠던 피랍생활을 다시 증언했다.
피랍자중 제창희(38)씨는 아프간 남부 해발 3,000m 산악지대에서 토굴 생활을 했다. 남자들은 수시로 구타 당했고 각종 노역을 강요 당하는 노예같은 생활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토굴에 들어온 독사를 나무로 잡아야 했고, 목에 총이 겨눠진 상태에서 나뭇가지와 발로 맞았다. 송병우(33)씨는 복면을 쓴 채 구타 당하다 구덩이에 빠지면서 가슴 뼈를 다쳤다.
탈레반은 대검을 장착한 총을 제씨의 목에 대고 개종을 강요했으며 5차례 개종 기도문을 따라 하라고 시키며 반복해서 때렸다. 고 배형규 목사 그룹의 유정화(39)씨에게는 “이슬람을 믿으면 살려주겠다”고 위협했다. 탈레반은 유정화씨 그룹을 구덩이 앞에 세워 놓고 기관총을 겨눈 상태에서 수차례 비디오 촬영을 강요했다. 일부 피랍 여성은 10여일간 하루 1시간씩 자며 거의 먹지 못했다.
대우는 그룹별로 달랐다. 상당수가 폭행 당하고 살해 위협을 받았지만 휴대전화로 한국의 가족과 통화한 그룹도 있었다. 서명화(29)씨는 함께 있던 탈레반이 아프간식 이름을 지어주며 우호적으로 대했고, 갖고 있던 휴대전화로 짧지만 한 번 남편과 통화했다. 서씨의 동생 경석씨는 떨어져 있는 누나와 1주일에 한 번 꼴로 쪽지를 주고 받았다.
고세훈(27)씨 그룹은 거의 매일 밤 거처를 옮기는 등 피랍 중 24차례 이동했고, 다른 그룹도 5~12차례 이동하며 헛간이나 창고, 민가 등 다양한 곳에서 지냈다. 이동 중에 남자들은 눈을 가렸고 여자들은 길을 인도하면서 탈레반을 뒤따라 갔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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