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고향 방문은 윤이상 선생의 고향 방문입니다. 저는 선생의 영혼을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4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부인 이수자(80)씨는 떨리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귀국 소감을 밝혔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 이후 한국을 찾지 못하고 베를린과 평양을 오가며 지내온 이씨는 5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사과와 초청 편지를 받고 ‘2007 윤이상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10일 귀국했다.
11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씨는 전날 귀국 비행기를 탔을 때 한국에 돌아온다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기뻐서가 아니라 남편이 그토록 바라던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기 때문입니다. 윤이상 선생이 살아있어서 같이 왔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선생이 함께 왔다면 물가에 가서 고기를 낚는 선생 옆에 앉아있었을 것이고, 함께 산에 올라가서 조국의 산을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이씨는 윤이상의 업적을 강조하고, 음악적 명예 회복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윤이상 선생은 과거 정부에서 온갖 이름을 다 붙였지만 실제로는 민족의 아들로서 부끄럼 없이 살았고 국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사람”이라면서 “선생의 예술가적 생애를 기리고자 한다면 당연히 국가가 뒷받침해서 축제를 열어야 하며 그것이 당연한 예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베토벤,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등 역사 속 예술가들은 조국에 의해 예술을 꽃피웠는데 윤이상 선생은 조국에서 평생동안 아픔만 당했습니다. 정부는 선생이 남긴 유산을 갈고 닦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해서 세계에 민족의 정기를 알려야 합니다. 그것이 민족의 아들로서 살았던 불행한 예술가에 대한 예우이자 명예 회복이라 생각합니다.”
부산 출신인 이씨는 부산사범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하다 같은 학교 음악 교사였던 윤이상과 결혼했고, 1957년 남편을 따라 독일로 건너갔다. 이씨는 “외국에 산지 50년이 넘어서 현대화된 한국의 모습이 낯설다. 앞으로 왕래하면서 마음을 붙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통영에 있는 남편의 선산을 찾아 조상님께 절을 올릴 것이고, 제주도를 한번 가보고 싶다”고도 했다.
이씨는 16일 개막하는 윤이상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통영과 부산을 방문해 친지를 만난 뒤 10월 3일 북한으로 떠나 같은 달 20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윤이상 음악회에 참석한다. 그는 “통일부 장관의 초청을 받아 서울에 가야겠다고 했더니 최고 책임자(김정일 국방위원장)가 충분히 돌아보고 마음을 풀고 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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