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노무현 정권의 임기 말엔 세 가지가 없다"고 공언해왔다. 게이트와 레임덕, 정치공작이 없다는 3무(無)론이다.
도덕성이 최고의 자산인 만큼 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릴 게이트가 터질 리 없고, 따라서 임기 말에도 권력이 누수될 까닭이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또 청와대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게 바로 정치공작이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한나라당이 `이명박 후보 죽이기'의 배후를 청와대로 지목한 것은 비겁하고 낡은 정치공작"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런데 지금 3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을 둘러싼 의혹이 춤을 추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두 '권력 실세'와 관련된 의혹은 '권력이 배후인'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이 충분하다. 그렇게 되면 '클린 정권'의 도덕성은 치명상을 입고 대통령도 뒤뚱거리는 오리 신세(레임덕)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각종 설만 난무하고 변죽만 울릴 뿐 검찰 수사가 이렇다 할 폭발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의 행동은 법적ㆍ도덕적으로 부적절했지만 역대 정권과는 달리 권력형 게이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신정아씨 비호 의혹과 관련해 변 전 실장이 신씨와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청와대는 변 전 실장 개인의 거짓말에 방점을 찍고 있고 일부 국민들도 비호 의혹보다 '스캔들'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양상이다.
더욱이 신씨가 미국에서 귀국하지 않고 변 전 실장이 함구로 일관한다면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와 직권남용 정도 말고는 검찰이 파헤칠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변 전 실장 위의 정권 실세 관련 의혹은 말할 나위도 없다.
부산 지역 건설업자 김상진씨한테서 2,000만원의 후원금을 받은 정 전 비서관의 비호의혹도 게이트로 발전할지 의문이다. 그가 후원금을 받은 시점은 정권 초인 2003년 3월이다. 이후 커넥션은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김씨에게 연결해 줬다는 것 말고는 아직 특별히 드러난 게 없다.
그러나 게이트가 없다고 해서 레임덕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비약이다. 아무리 힘센 정권도 임기 말이면 맥이 빠지는 게 세상의 당연한 이치다.
공무원 사회를 보면 알 수 있다. 공무원들은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얼마 남지 않은 정권에 충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변 전 실장과 관련, 청와대의 점검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게 레임덕을 상징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반 국민들도 3무야 어찌 됐든 대통령이 조용히 국정을 마무리하길 바란다. '레임덕은 막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특유의 공격성과 정국 전환형 깜짝 카드를 드러내 놓는다면 환영할 국민이 거의 없다. 참여정부가 강조해온 법치주의, 특권없는 사회, 투명한 사회 등 핵심 가치 실현을 위해 애쓰면서 차분히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게 현명하다.
가뜩이나 많은 사람들이 다음 대선에서 찍을 만한 후보가 없다고 한숨 짓는 마당에 임기 말의 노 대통령까지 나선다면 '대통령 혐오증'이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돼서 하는 말이다.
이종수 사회부 차장 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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