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형편이 어려운 운동선수는 고3 때 고민에 빠진다.
남들처럼 대학생이 돼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고 싶지만 프로나 실업팀에 입단해야만 할 처지다. 태권도 선수 김보혜(22ㆍ삼성에스원)는 대전체고 3학년이던 지난 2003년 고려대와 한국체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먼저 생각한 김보혜는 사학 명문 고려대와 태권도 명문 한국체대 학생이라는 꿈을 접고 실업팀에 입단했다.
대학교수가 꿈인 김보혜는 2005년 단국대 태권도학과에 입학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푼 김보혜는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밴텀급에서 우승했고, 지난해는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선수권까지 제패했다. 훈련에 지친 몸으로 밤잠을 줄여 책과 씨름한 김보혜는 피곤한 줄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나 김보혜는 지난 8일 단국대에 자퇴원을 제출해야만 했다. 대한체육회 선수 등록 규정상 ‘실업팀 선수는 대학에 다닐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더 이상 공부할 수 없다는 사실에 김보혜는 목놓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대한체육회 박태호 운영부장은 규정이 잘못됐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실업팀 선수는 직장을 포기하든지 학업을 포기하든지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자역도 간판스타 장미란(24ㆍ고양시청)이 이중 신분 문제로 지난 3월 고려대를 자퇴한 데 이어 실업 태권도 선수 12명이 최근 무더기로 학업을 포기했다. 대학 체육을 보호하고자 만든 제도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하던 선수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셈이다. 태권도 외에도 많은 실업 선수들이 대학에 다니고 있어 선수들의 자퇴 사태는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김보혜는 “악법도 법이니 따라야 하지 않겠냐”면서 “더 이상의 피해자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울먹였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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