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표절 및 중복 게재, 연구비 횡령 등 학계의 권위를 좀먹는 악재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남의 과거 논문을 그대로 베껴 학회에 제출하는가 하면, 한 대학 교수는 ‘자기 표절’논문으로 연구비를 타 쓰다 적발돼 사직했다. 학회나 대학들이 연구 윤리 확립과 자체 정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여전한 연구윤리 실종
올해 3월 대한토목학회의 한 논문 심사위원은 서울 A대 토목공학과 B교수와 이 대학 석사 출신인 C씨가 공동저자로 참여해 학회에 제출한 영자 논문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해외 저명 논문을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그대로 베껴 쓴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기 때문이다.
학회 측은 설립 이후 처음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서는 한편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토복 분야의 유명 학자인 B교수는 “이번 일이 드러나기 전까지 그런 논문이 학회에 제출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제자 C씨가 내게 ‘논문 실적을 쌓을 욕심에 다른 논문을 베껴 쓰고 교수님 이름을 집어 넣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해명했다.
수도권 소재 D대는 최근 신문방송학과 E교수로부터 사직서를 받아 수리했다. 내부 제보를 받은 이 학교 연구진실성위원회가 2003~2006년 발표된 E교수의 논문 10여 편에 대해 지난달 “자기 논문 표절 등 연구 부정 행위가 인정된다”고 결론내렸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와 관계기관으로부터 수 억원대의 연구용역비를 타내고는 이미 발표됐던 자기 논문을 내용만 살짝 바꿔 새 것처럼 포장해 제출한 혐의도 포착됐다. E교수는 학교 측의 처분에 처음엔 반발했지만 최근 학력 위조 사건 등으로 시끄러운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듯 결국 사표를 냈다.
연구윤리 회복 방안 없나
각 학회나 대학은 수면 아래에서 끊이지 않고 곪아 터져 나오는 연구윤리 위반 행위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간호과학회는 산하 8개 학술지가 논문을 싣기 전에 논문 목록을 교환하고 내용을 상호 점검한다는 내부 방침을 7월 이사회에서 결정했다. 학술지를 발간한 후에야 뒤늦게 논문 표절이나 중복 게재 사실이 드러나는 불상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또 사전 검증 과정에서 표절 또는 중복 투고 사실이 적발될 경우 투고자의 소속 대학이나 연구소에 통보하고 3년 간 논문 게재를 할 수 없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사전 검증 조치에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많은 논문을 일일이 검증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학자적 양심을 갖추도록 학부 과정에서부터 연구윤리를 철저히 가르치고, 윤리 위반 사실이 적발된 사람에 대해선 일벌백계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 양 서울대 연구처장은 “가령 2,000명의 논문을 하나하나 검증하려면 대학 교수 등 정예인원 100명을 투입해도 모자란다”며 “연구 성과물에 대해선 수시로 ‘랜덤 체크(무작위 조사)’를 해서 부정이 드러날 경우 ‘징역형’만큼이나 무거운 처벌로 다스리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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