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가 미사일방어(MD) 공동기지 건설을 제안한 아제르바이잔에 군사대표단을 파견키로 했다. 폴란드와 체코 등 동유럽에 MD 기지를 건설하려는 미국 정부가 이를 극력 반대해온 러시아의 타협책에 주목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미국이 러시아의 반발에 한발 물러서려는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의 제안을 물리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미국의 현장 조사는 양국 MD 갈등을 해소할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7일 호주 시드니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한 뒤 “미국 군사대표단이 이 달 말 아제르바이잔의 레이더 기지를 방문해 동유럽 레이더 기지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조사키로 했다”고 밝혔다.
미 백악관도 러시아가 운용중인 이 기지를 점검하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하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확인, MD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대립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가발라에 있는 레이더기지는 6월 독일에서 열린 주요 8개국 정상회담(G8)에서 푸틴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양국이 공동 사용할 것을 처음 제안한 곳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예상 못한 러시아의 제안을 받고 이를 숙고한 끝에 “동유럽에 MD 기지를 건설하려는 기존 계획을 고수한다”며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
미국은 이란, 북한 등 ‘불량국가’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체코에는 레이더기지를, 폴란드에는 10기의 미사일 요격시스템 배치를 추진해 왔다.
러시아는 이후 미국의 동유럽 MD 기지 배치는 “어떤 경우에는 용납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고 선언한 뒤 미국과 서방에 대한 강력한 군사 대응책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7월 초 양국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의 입장변화가 없자 러시아는 유럽의 ‘뒷마당’인 칼리닌그라드에 미사일기지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칼리닌그라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영토이다. 7월에는 재래식 전력의 파기를 규정한 유럽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의 이행 유보를 발표했고, 지난달에는 미국의 MD망에 맞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로루시 등 구 소련권에 산재한 방공망을 2015년까지 현대화하는‘신 방공체계’ 구축을 선언했다. 이 달 초에는 12월 가동을 목표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가 배치에 들어갔다.
미국이 가발라 레이더기지 수용 의사를 시사한 것은 러시아의 반발을 무마하지 않으면 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미_러시아 군사대립이 심화해 오히려 안보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미국은 이란 핵문제, 세르비아로부터의 코소보 독립 등 국제 현안에서 강력한 지렛대를 갖고 있는 러시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러시아는 가발라 기지의 수용 여부를 MD망 구축 명분에 대한 미국의 진정성을 재는 척도로 보고 있다. 가발라 기지에서의 미_러 협조가 현실화하면 MD 시스템 구축은 물론 ‘신냉전’을 방불케 하는 양국의 군사대립에도 적잖은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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