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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9> 수교문안 작성만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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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9> 수교문안 작성만 남다

입력
2007.09.1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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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 외무장관과 김종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그리고 K 안기부 차장은 6월6일(토) 낮 12시 동해사업 실무대책반이 작업을 해온 동빙고동 안가에 모였다. 나와 김석우 아주국장, 변종규 외교안보비서관, 한영택 수석연구관이 함께 했다. 나는 6월4일 귀국 즉시 신정승 과장과 함께 정리한 문서를 놓고 동해사업 제 2차 베이징 예비회담 결과를 보고했다.

당면문제는 대만정부의 한국 내 재산매각 움직임을 파악하고 이를 막는 것이었다. 대책을 협의한 끝에 안기부의 K 차장 등이 책임지고 일일점검 형식으로 파악, 대처하기로 했다.

이상옥 장관은 수교문서 작성에 대해 지시했다. ‘수교의정서’와 ‘양해각서(비공개)’, 언론발표문, 대만통고문 등과 함께 ‘동해사업 추진계획’을 준비해서 6월12일 다시 소집되는 3자회의에 보고토록 지시했다. 김종휘 수석은 그러나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내세워 예비회담을 마감하고 본회담 개최를 강력히 주장했다.

때맞춰 베이징주재 한국무역대표부의 김하중 참사관이 중국외교부 장팅옌(張庭延) 아주국 부국장과의 면담결과를 보내왔다. 보고에 따르면 중국측은 제 3차 예비회담을 서울에서 6월20~26일 중 이틀 동안 열어 2차 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기초로 공동성명 및 비망록을 작성하자고 제안했다.

다시 말해 수교문안 등을 서울에서 다 정리하고 양측이 완전 합의를 이룬 뒤 수석대표들이 참석하는 본회담에서는 이를 확인ㆍ결정하고 수교방식과 정상회담을 주요사안으로 협의하자는 것이었다. 본회담은 빨라야 7월 중순 또는 하순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 중국측 입장이었다.

6월12일 3자회의에서는 회의벽두부터 격론이 벌어졌다. 수석대표로서 본회담 주재를 고대하던 김 수석은 중국측이 제 3차 예비회담으로 사실상 수교교섭을 마무리 한 후 본회담을 7월 중하순에 개최하자고 제안한 것을 합의사항 위반으로 몰아붙였다. 김 수석은 예비회담 대신 늦더라도 7월에 본회담을 개최하자고 주장하고 중국측 약속위반에 대해 내가 책임질 것을 주장했다.

나는 책임질 일은 지겠다고 전제하고 의견을 개진했다. 즉 서울예비회담 대신 7월까지 기다렸다가 본회담을 고집할 경우 수교와 정상회담은 그만큼 늦어지고 보안도 어려워지는 위험을 감수하느냐, 아니면 중국측 제안대로 예비회담을 한 번 더 개최해서 조기 수교를 실현하느냐는 선택의 문제인데 두 방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달라고 요구했다. 안기부 K 차장은 예비회담을 한 번 더 개최한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 볼 것 없다고 지원했다.

강경입장으로 급선회한 김 수석은 정상회담에 대해 중국측이 답을 가져 오기 전에는 다른 문제를 양보하지 말 것과 대만조항에 관한 우리 입장도 후퇴시키려 했다. 김 수석은 본회담을 6월 하순부터 1주 또는 2~3주 간격으로 서울과 베이징에서 개최할 것을 주장했다. 이 장관은 중국측 제안대로 6월 20, 21 양일간 제3차 예비회담을 서울서 개최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매주 화요일 안기부장의 대통령 단독면담이 있었는데 6월16일 이상연 안기부장의 보고 직후 본회담 수석대표가 김종휘 수석에서 노창희 외무부차관으로 교체되었다.

예비회담 참석차 6월18일 은밀히 귀국한 김하중 참사관, K차장과 내가 함께 대책반 근처의 음식점에서 저녁을 하는 자리에서 K 차장은 김 수석이 교체통보를 받고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 불만을 쏟아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K 차장은 다음날 조찬회의에서 김 수석이 권 대사에게 예비회담 수석대표를 사임하라고 요구하면 ‘일보전진을 위해’ 사임하겠다는 말을 하라고 충고했다.

6월19일 아침 7시 반 플라자호텔 1170호실에서 열린 3자회의에서 나는 ‘동해사업 추진계획’을 ‘수교의정서안(案)’ 과 ‘양해각서안’을 곁들여 보고했다. 김 수석은 보안문제를 들어 미합의 사항은 괄호 안에 남기더라도 예비회담은 조속히 끝내고 정상회담과 바게인(Bargain) 하라는 등 예비회담에 임하는 우리측 입장을 강경노선으로 선회해 양보안을 모두 없애려 했다.

안기부의 K 차장은 수교협상의 전 과정을 통해 막후에서 가장 긴요한 역할을 해 왔는데 특히 김 수석과 이 장관의 의견차이가 있을 때는 항상 합리적이고 원만하게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도록 조정자역할을 해왔다.

이상옥 장관은 조기수교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되도록 대표단에 재량권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 장관은 원래 우리측 3가지 문서를 ‘수교의정서’ 한 가지로 통합하도록 지시했다가 중국이 양해비망록 작성을 제의해오자 ‘수교의정서’에 들어가기 곤란한 문제를 비망록에 담는 것이 좋겠다고 대표단의 권한을 넓혀주었다.

이날의 결정을 토대로 대책반은 ‘수교의정서’ 와 ‘양해각서’의 문안을 다시 작성했다. 제 3차 예비회담 장소는 서울 광장동 워커힐의 가장 높은 언덕,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을 굽어보는 VIP빌라(현재는 Aston House로 바뀜)로 정하고 완벽한 보안 속에 회담준비에 들어갔다. 중국대표단은 관광객으로 가장해서 입국시키기로 했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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