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화랑 대표는 최근 어느 미술 경매회사의 옥션 도록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얼마 전 집에 걸 그림을 사고 싶다며 화랑을 찾아온 부부에게 팔았던 한 유명작가의 작품이 판매 금액의 5배 가까운 추정가를 달고 경매에 나와 있었던 것.
그는 “시장 상황이 좋다 보니 초보자들은 물론 일부 소형 화랑 관계자들까지 컬렉터로 위장해 그림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그런 사람들이 경매 등 2차시장에 내놓는 비싼 가격이 마치 시장가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고 혀를 찼다.
미술시장이 단기간에 급성장하면서 시장 왜곡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인기 작가의 작품만 계속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 근현대 서양화에 편중된 수요 등 각종 부작용이 미술시장의 건실한 성장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 유망한 신예나 화랑전속작가 작품만 편애
가장 심각한 것은 일부 ‘팔리는 작가’와 나머지 작가들의 극심한 양극화. 박수근 김환기 이우환 장욱진 천경자 등 소위 ‘블루칩’ 작가와 김동유 홍경택 최소영 등 투자 전망이 밝은 젊은 작가들만 시장에서 대접받고 있어 중견작가를 위시한 나머지 그룹들은 시장의 온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경매시장 ‘톱10’ 작가들의 경매낙찰액이 전체의 40.8%(2006년)를 차지한 반면, 미술인의 75.5%는 100만원 이하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형편이다.(2006년 문화관광부 실태조사) 한국미술협회 회원들이 “미술시장이 활성화됐다고 하지만 젊은 작가나 화랑 전속작가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며 ‘모든 작가에게 활짝 열린 경매’를 모토로 새 경매회사(오픈옥션)을 설립했을 정도다.
■ 시장과열 탓 작가도 못알아보는 습작 나돌기도
장르간 불평등도 심각해 근현대 서양화를 제외한 미술 분야들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양화의 경우 인기작가는 전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작품 대부분이 팔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할 정도고, 일부 작가는 작가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습작까지 고가에 시장에 나돌고 있는 판이다.
한 화랑 관계자는 “요즘은 자기 작품을 갖고 있는 작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시장에 작품이 쏟아져 구작 전시회를 기획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미술 분야는 평균 낙찰률 50%로 90%가 넘는 근현대 미술품과 큰 차이를 보인다. 낙찰가도 지나치게 낮아 지난해 서울옥션에서 낙찰가 3,000만원을 넘은 고미술 작품은 36점에 지나지 않았다.
고미술 전문화랑 동예헌의 안성철 부장은 “조선시대 6대 화가인 3원3재(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긍재 김득신, 현재 심사정, 겸재 정선)의 작품도 1억원을 넘기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역사를 통해 검증된 문화재급 고미술품의 가격이 중견작가 그림값의 1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 온라인 경매회사, 미술시장 거품 뺄 대안?
거품론에 시달리는 미술시장에 싸고 간편하게 미술품 거래를 할 수 있는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온라인경매회사.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사이트인 포털아트를 비롯해 아르바자르, 메가아트 등이 올해 잇따라 미술유통시장에 진입, 수십만원대부터 시작하는 중저가의 작품을 다량 내놓으며 일반인들이 손쉽게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길을 텄다.
하지만 인터넷 경매는 작품성과 진위를 확인하기 쉽지 않아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데다 재판매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온라인 경매가 우리 미술시장의 취약점이었던 중저가 시장을 개척해 유통경로를 다변화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대부분 장식용 소품들이므로 재판매를 위한 투자가 목적이라면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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