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 탄환’ 아사파 파월(25ㆍ자메이카ㆍ190㎝ 88㎏)의 이름 앞엔 늘 ‘무관의 제왕’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붙는다. 2005년 6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그랑프리 육상대회에서 9초77로 남자 100m 세계기록을 세운 뒤 두 차례나 더 9초77을 찍는 등 명실상부한 ‘인간 탄환’이지만 큰 대회에서 늘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파월은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부정출발로 실격,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저스틴 게이틀린(미국)에 우승을 내준 채 5위로 밀려났다. 불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5년 헬싱키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해야 했고, 지난달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5연승 중이던 타이슨 가이(미국)에 덜미를 잡혀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파월은 통산 30번이나 9초대를 기록한 현존하는 최고의 스프린터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파월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오사카 대회가 끝난 뒤 곧바로 코치와 함께 자신의 주법(走法)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런 노력 덕분에 파월은 10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리에티의 라울 기도발디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제37차 그랑프리대회 100m 예선에서 9초74를 찍으며 자신이 갖고 있던 세계기록을 100분의 3초 단축했다. 이날 레이스에서 뒷바람은 초속 1.7m로 기준풍속(2m)를 넘지 않았으며, 파월은 7명 주자 중 가장 빠른 반응속도(0.137초)로 스타트를 끊었다.
레이스가 끝난 뒤 파월은 기록 경신에 대한 기쁨보다 자신의 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파월은 “이것으로 친구들에게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돼 기쁘다. 오늘 나는 9초70 이하로도 뛸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9초68까지 기록을 단축하고 싶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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