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유방암 수술을 받고 왼쪽 가슴을 절제한 P(46)씨는 6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대중목욕탕을 찾은 적이 없다. 옷도 모두 인터넷을 통해 대충 사 입는다. P씨는 한쪽 가슴을 잃으면서 나머지 인생도 송두리째 잃은 느낌이라고 했다. 지금도 수시로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가슴을 도려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때늦은 후회로 세월만 보내고 있다. 재건수술을 하면 된다지만 수천만원대의 수술비를 감당할 방법이 없어 포기했다.
생활방식이 서구화하고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유방암이 증가하는 추세다. 유방암 발병 원인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른 초경, 식이습관, 비만, 과음, 흡연 등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는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지목되고 있다. 에스트로겐은 초경을 일찍 시작하고 첫 출산과 폐경이 늦어질수록 많이 분비된다. 유방의 유선세포는 에스트로겐에 민감해서 자주 노출되면 그만큼 변이세포가 생기고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유방암의 가장 흔한 증상은 통증이 없는 멍울이다. 주위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딱딱하게 느껴지며 만져도 잘 움직이지 않는 멍울이 있으면 유방암을 의심해봐야 한다. 유두에서 분비물이나 피가 나오고 피부 함몰, 유두 함몰, 습진 증상이 있을 때도 검진을 받는 게 좋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유방 X선검사, 초음파ㆍ조직검사를 해야 한다. 동양인의 유방은 조직이 치밀해 유방 X선 검사만으로는 조직 속에 숨어있는 멍울을 찾기가 어려우므로 초음파검사를 같이 하는 것이 좋다.
초음파 검사는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조그만 혹까지도 찾아낼 수 있다. 이 검사는 진짜 혹인지, 단순히 유방조직이 증식해 혹처럼 만져지는 것인지, 아니면 물혹(낭종)인지, 고형 혹인지를 구분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유방암 치료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유방암은 완치율이 80%에 이르러 ‘착한 암’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투병 기간은 다른 암에 비해 길다. 다른 암은 치료 후 5년 생존을 기준으로 완치 판정을 내리지만 유방암은 10년을 본다. 실제 유방암 5년 생존율은 83.5%이지만 10년 생존율은 76.6%로 떨어진다.
유방암 수술에는 유방 전부를 잘라내는 변형근치 유방절제술과 종양 주위의 유방 일부를 절제하는 부분절제술(유방보존술)이 있다. 변형근치 유방절제술은 유방의 다른 부위에도 있을지 모르는 미세 암 조직을 전부 제거하기 위한 수술이다. 유방 피부와 조직뿐 아니라 겨드랑이 임파절까지도 절제한다.
부분 절제술은 1기와 2기의 유방암에서 시행한다. 암 조직을 포함해 주변 1~2㎝의 유방 조직과 겨드랑이 임파절을 떼어내고 방사선 치료를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수술을 하면 유방을 상당 부분 유지할 수 있어 모든 환자들이 이 수술을 선호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유방 보존술은 종양의 크기가 2~3㎝ 이하인 초기암 환자에게만 가능하다.
방사선 치료는 고에너지를 이용해 암세포를 파괴하는 방법으로, 보통 1주일에 5회씩 5~6주간 시행된다. 유방 부분 절제술은 재발을 막기 위해 시행하지만 암세포처럼 재생력이 왕성한 머리카락, 손톱, 장 세포에도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항암제 치료는 전신에 영향을 미치는 치료법으로, 수술 전에 유방암의 크기를 줄이거나 수술 후에 재발을 억제하기 위해 투여한다. 유방암 치료에 사용하는 항암제로는, 유방암이 에스트로겐 호르몬 영향을 많이 받는 것에서 착안해 이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을 사용하기도 한다. 항호르몬 치료제로는 타목시펜이 널리 사용됐다. 하지만 수술 후 5년 뒤에는 큰 효과가 없어 5년 동안은 타목시펜을, 그 이후에는 차세대 항호르몬제인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많이 처방되고 있다. 아로마타제 억제제로는 아리미덱스, 훼마라, 아로마신 등이 있다.
호르몬 치료는 장기간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항암 화학 요법을 시행할 때 동반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많이 쓰이는 치료법이다. 특히 고령의 환자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어 유방암 치료에 매우 유용하다고 인정받고 있다.
<도움말=서울대병원 외과 노동영 교수, 삼성서울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양정현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안세현 교수>도움말=서울대병원>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암을 말한다/ "혹 만져지기 전에 발견시 100% 생존"
15년쯤 전 40대 후반 여성이 남편과 함께 근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한 달 전에 남편이 아내의 왼쪽 유방에서 엄지 손가락만한 단단한 혹을 만져져 아내를 병원으로 빨리 가자고 재촉했지만 아내는 통증이 없으니 암이 아닐 것이라고 고집을 부려 설득 끝에 겨우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따님이 두세 달 뒤면 수능시험이라서 공부에 지장을 받을까 봐 시험 끝나고 진찰받으려 했다는 부연설명도 뒤따랐다. 진찰하여 보니 유방암 2기, 만일 두서너달이 지났더라면 더욱 진행되어 수술이 불가능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항간에서는 유방에 혹이 만져질 때 아프면 암이고 아프지 않으면 암이 아니라는 잘못된 상식이 있다. 그러나 유방암은 오히려 대부분 통증이 없고 단지 10%에서 통증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유방암의 가장 흔한 증상은 혹이 만져지는 경우로서 대부분 환자 자신이 만지지만 목욕탕에서 때미는 아주머니가 발견하는 경우도 본다.
이 경우처럼 남편이 만져서 오는 경우는 드문데 이는 남편들이 때밀이 아줌마보다 아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데서 연유한다면 너무 비약일까? 유방암 조기진단은 혹이 만져지기 전에 유방X선 촬영이나 초음파검사로 할 수 있다. 혹이 만져지기 전에 유방암을 진단하면 생존율은 100%에 가깝다.
그리고 치료도 유방 전체를 제거하고 겨드랑이 림프절을 모두 잘라내는 전통적인 유방암 수술보다 유방을 부분절제하고 겨드랑이 림프절도 전이를 감시하는 림프절 일부만 떼어내는 간편한 수술로도 완치할 수 있다. 따라서 40대이상 여성은 유방암 조기 진단을 위해 증상이 없어도 매년 유방X선 촬영과 진찰을 권하고 있다.
이 환자도 혹이 작아 유방부분절제술을 하려했는데 의외로 주위에 수술 전 검사에 보이지 않던 0기 암이 넓게 퍼져서 할 수 없이 유방을 모두 잘라냈다. 수술직후 유방이 보존되어 있으리라 기대했던 환자와 남편의 실망은 매우 커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진땀을 빼야 했다. 회복이 잘 돼 퇴원 후 6개월 정도 항암치료를 받는데 항상 남편이 의지가 돼 주어 치료를 포기하려던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모든 암이 그렇지만 특히 유방암환자는 가족의 따뜻한 애정과 협조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 그 중에서도 남편 역할이 중요하다. 유방암 환자 중에는 남편의 무관심 등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심하면 이혼하기도 한다. 입장을 바꿔 보면 암을 앓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남편과 가족 냉대까지 받는다면 어떤 심정일까 쉽게 상상이 간다. 살고 싶은 의욕이 없어질 텐데 투병의지가 어디 있겠는가?
이 환자는 유방암 투병 중에 항상 곁에서 의지가 돼 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남편을 위해서도 오래 살아야 하겠다는 오기로 힘든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쳤다. 항암치료 후 재발 유무를 알기 위해 외래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검사 받을 때에도 남편이 거의 동행해 궁금한 점을 묻고 하여 주치의인 나와는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농담하는 관계가 되었다.
남편이 유방암에 대해 인터넷과 책을 통해 많은 지식을 얻어 직접 아내 식단을 짜는가 하면 때로는 의사인 나에게도 어려운 질문을 해 당황케 만들기도 했다. 항암치료 후에도 가끔 우울한 아내를 위해 주말이면 교외로 드라이브하는 등 노력도 해주고 수술 후 3년 뒤쯤 등 근육을 떼어내 새로 유방을 만드는 유방재건성형수술도 남편의 강권으로 받게 되었다.
성형수술 후 남편의 말인즉 “이제 제 아내도 다시 완전한 여성이 되었죠. 인생에서 신장 개업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합니까?”였다. 수술 후 15년 재발없이 환자는 건강히 지내고 있고 발병 당시 수능 준비하던 따님은 벌써 시집가 요즘 귀여운 손자들을 돌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남편이 지난해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어 보냈다. 올해도 이들 부부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 담긴 기분좋은 크리스마스 카드가 기다려진다.
양정현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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