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전체 연매출 20억, 그보다 3배나 많은 은행빚, 연간 방문객 27만명. 2001년 남이섬의 재무제표였다. 회생 불가, 대출 불가, 매각 불가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남이섬이 2005년 매출 100억원, 연 방문객 160만명을 넘어서는 신화를 낳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4년 만에 매출액 5배, 방문객 6배의 폭발적 신장세를 기록했을까. 도약을 시작한 2001년 말부터 남이섬을 이끌어온 강우현(54) 사장을 만나봤다.
“도산을 목전에 둔 남이섬이 한국 대표 관광지로 소생한 것은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장난 같은 상상’을 눈으로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성공 비결에 대한 강 사장의 짤막한 결론이다. ‘장난 같은 상상’,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시에는 뭘 만들려고 해도 돈이 없었죠. 그래서 남이섬에 파묻어놓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강 사장의 눈에 띈 것은 소주병이었다.
소주병 3,000여 개로 담장을 쌓으니 그럴듯한 조형물이 됐다. 여기에 들어간 소주병 상표를 따 ‘이슬 정원’이라 이름했다. 쓰레기를 태우고 난 재로 벽돌을 만들었고, 오래된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목재는 표지판이 됐다. 오죽하면 남이섬에서는 쓰레기를 ‘쓸 애기’라고 부를까.
술병은 꽃병으로 기능을 바꿨고, 잡초는 화초로 개념을 달리했으며, 남이섬은 고객들을 먼저 생각한다는 뜻에서 ‘남의 섬’으로 여기도록 했다. 새해맞이는 10월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은 11월부터, 가을과 겨울을 한눈에 보여주는 신선한 시도들로 남이섬은 바뀌기 시작했다. 도청에서 얻어온 소방차로 수영장에 소나기를 뿌리고, 겨울엔 수영장을 얼려 얼음탑을 쌓았다. 샤워기 꼭지를 거꾸로 세워 분수대를 만들고, 겨울에는 분수를 얼려 고드름 조형물을 만들었다.
남이섬에서나 볼 수 있는 장난기, 낙서 같은 간판들이지만 사진을 찍기에는 최고의 배경이 됐다. 동시에 남이섬의 풍경과 이야기는 사진을 타고 전국으로, 세계로 번져나갔다. ‘사고의 전환, 남들이 시도한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강 사장의 철학은 그렇게 남이섬에 오롯이 녹아들어 삼류 유원지를 일류 관광지로 바꿔놓았다.
말도 되지 않아보이던 것들이 눈 앞에 현실로 나타나자 고개를 젓던 직원들도 하나 둘 상상경영의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저는 직원들에게 공상(空想) 망상(妄想) 잡상(雜想)도 좋다고 했습니다. 상상경영이 뭐 별 겁니까? 남들이 비웃는 괴짜 같은 상상도 실현되면 이상이죠.” 그의 사무실 한켠을 보니 상상력이 만들어낸 갖가지 소품들이 즐비하다. 그는 별스럽게 보이지 않는 재떨이를 들어보이며 “계량기 뚜껑으로 만든 겁니다. 이런 게 다 남이섬의 보물이죠. 조바심 낼 것도 없어요. 이런 보물들을 조금씩 꺼내놓기만 하면 됩니다”라며 자랑이다.
‘남이섬에서 꼭 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묻자 의외로 허황한 대답이 돌아온다. “남이섬이요? 별로 볼 것도 없어요.” 남이섬의 상징 ‘메타세쿼이아길’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그는 설명을 이어간다. “남이섬에는 ‘이 건물의 역사가 어떻고, 저런 사연이 있습니다’라는 표지판이 없어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문을 열고 들어가 직원에게 물어보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거죠. 그 재미가 곳곳에 숨어 있는 게 남이섬입니다. 그래서 다시 찾게 되는 것이고요” 다만 직원 교육은 철저하다. 남이섬의 역사, 건축물의 위치와 사연으로 ‘나미나라 구구단’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직원 시험을 본다. ‘물어보면 알 수 있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함이다.
남이섬은 테마나 컨셉트도 정해놓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공연의 장으로, 다른 이에게는 아름다운 숲이 있는 휴식처로 자리매김하면 그만이다. 그래서일까. 남이섬은 한국의 전통도 고집하지 않는다. 강 사장은 “스스로 남이섬을 규정짓지 않으니 오히려 다향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국을 버리니 세계가 이곳을 찾더라”고 말했다. 너도나도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는 요즘, 강 사장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어디로 놀러 가나를 생각하다가 대사관과 함께 ‘국가의 날’을 만들었어요. 주한 외국인들이 남이섬으로 소풍오는 날이죠. 이날 하루는 섬 전체가 그 나라가 되는 겁니다.” 2005년부터 벌인 행사에는 현재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인도 등 10여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각자 고향의 날을 찾아 남이섬에 온 외국인들은 스스로 장식한 풍경을 보며 고향을 방문한 기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급성장 후 안정기에 든 남이섬이지만 아직 멀었다는 게 강 사장의 견해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있는 관광지라면 1년에 4번은 바뀌어야 합니다.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고객들이 다시 찾지 않기 때문이죠”라며 공사중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장난 같은 상상으로 남이섬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먹고 마시던 유원지가 문화예술 공간으로
서울에서 북한강을 따라 북쪽으로 63km, 청평호수 위에 가랑잎처럼 떠 있다. 10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찾은 남이섬. 추억은 역시 추억일 뿐이었다. 예전 선착장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느닷없이 ‘나미나라공화국 출입국사무소’라는 팻말이 다가온다. 국가 형태를 표방하는 특수한 관광지를 독자적으로 가꾸자는 뜻에서 지난해 3월 1일 나미나라공화국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게 직원의 설명이다.
공화국이라는 형태에 걸맞게 이 곳에선 1년 만기 단기여권, 평생여권, 기념품용 여권을 팔고 있다. 나미나라의 독립선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기들이 만든 화폐와 전화카드 우표까지 만들어 팔고 있다. 이국적인 정취에 빠지는 관문은 이렇듯 색다르게, 혹은 다소 발칙한 상상으로 꾸며져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남이섬의 행정구역상 위치와 면적, 변신과정 등을 설명하는 안내말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배를 탄지 6~7분이나 됐을까. 이윽고 섬에 닿았다. 길은 10년 전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풍경은 예전의 먹고 마시며 떠들던 유원지가 아니었다. 카바레 건물은 안데르센홀이 돼 전시장으로 꾸며졌고, 도깨비성은 유니세프홀로 바뀌어 ‘유니세프 창설 60주년 기념전시회’를 열고 있다. 안애림 나미나라 홍보간사는 “전시회를 보고 자발적으로 기부한 돈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후원금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선착장과 섬 중앙을 잇는 협궤열차로 얻어지는 수익금의 절반도 유니세프를 돕는데 쓰인다.
달라진 것은 이뿐이 아니다. 북에서 남으로 걸어서 20분 남짓 되는 공간에 노래박물관 언더스테이지, 베오그라드무대, 워터스테이지, 야외음악당 등 공연장이 5곳이나 된다. 주말이면 국내외 예술가들이 모여 공연을 펼친다고 하니 섬 전체가 멀티플렉스 공연장인 셈이다.
나미나라는 환경 학교이기도 하다. 환경운동연합 부설 환경교육센터에서 만든 남이섬환경학교에서는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재활용 공예, 친환경 염색, 생태 예술 등 환경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준다. 에코샵에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쓰레기를 재탄생시킨 재활용, 환경 상품을 팔고 있다.
시선을 달리 보면 나미나라는 대형 공방이기도 하다. 남이공예원에서는 도자공예를 비롯해 유리, 나무, 종이, 염색 등 각종 공예 체험을 할 수 있어 가족 단위로 와서 컵, 들풀 종이, 인테리어 소품 등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이섬의 달빛과 별빛, 새벽을 걷어올리는 물안개를 확인하려면 하룻밤을 자봐야 한다. 이럴 땐 나미나라 안에 있는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게 제격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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