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살림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가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다. 올들어 주요 경제정책의 입안 및 집행에 핵심적 지표가 되는 재정통계를 엉터리로 작성해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 규모도 상반기 실제 총지출의 15%를 넘는 17조원대에 달한다. 단순히 새 예산회계시스템의 오류라거나 실무자의 착각으로 어물쩍 넘기기에는 사안이 너무 무겁고 대외적으로도 망신살이 뻗쳤다. 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았다지만 책임은 면키 어렵다.
재경부가 상반기 재정통계를 발표할 때부터 사실 숫자에 의문이 많았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가 6조원 이상 적자 나고, 실질적 재정상태를 나타내는 관리대상 수지(통합 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수지 제외)는 무려 22조 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건전성 차원에서 약속한 관리영역을 훨씬 벗어난 규모로, 숫자가 맞다면 긴급히 적색경보를 발동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재경부는 ‘큰 정부’ 논란에 휘말릴까 봐 수치에 의심을 품기는커녕 변명과 우기기로 일관했다. 차관은 “재정의 62%를 상반기에 집행해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고 엉뚱한 소리를 해댔고, 국장은 ‘한 해 나라살림을 초여름 실적으로 판단하나’라는 글을 천연덕스럽게 국정브리핑에 실었다.
기자들이 “인건비 등 경상지출이 전년 대비 40% 이상 급증한 것이 이상하다”고 되물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결국 오류의 대부분은 공무원 인건비를 과다 계상한 탓으로 드러났으니, 쥐구멍을 찾아야 할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정부는 재정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시스템의 프로그램에 이상이 생겨 인건비 등의 항목이 잘못 입력됐으나 앞으론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같은 공학적 접근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핵심은 눈치를 보면서 정책이나 통계를 권력의 구미에 맞게 만들고 해석하려는 관료조직의 얼빠진 정신과 해바라기성 자세다. 상반기에만 15조원을 더 거둔 세수를 봐도 그들은 공복(公僕)이 아니라 권복(權僕)이다. 경제부총리가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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