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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간이 멈춘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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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간이 멈춘 자리에서'

입력
2007.09.11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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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두비엘 지음ㆍ유영미 옮김 / 프로네시스 발행ㆍ192쪽ㆍ1만원

저명한 사회학자가 46세 인생의 절정기에 파킨슨병을 확진받았다. 독일 기센대학 교수이면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크푸르트사회학회 회장 직에 막 오르기 직전이었다. “인생의 정오에서 세상 바깥으로 순식간에 내던져진 듯한” 지독한 패배감과 절망. 그러나 그는 갑자기 찾아온 절망의 자리에서 세상의 뒤쪽으로 물러앉는 대신 자기 병의 냉정한 관찰자이자 분석자의 자리에 서기로 한다.

파킨슨 병은 뇌의 깊숙한 곳 흑질에 이상이 생겨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결핍되면 손발이 떨리고 온몸의 근육이 뻣뻣해지며 움직임이 느려지는 증상이 진행되는 만성 불치병이다. 주로 55~65세에 발병하는 노인성 질환이지만 갈수록 발병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현대의학으로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치료 외에 별다른 치료법도 없다.

<시간이 멈춘 자리에서> 의 저자 헬무트 두비엘은 이 병을 15년 동안 앓으면서 자아와 세계의 위태로운 동거 속에 병의 징후와 진행, 자신이 경험한 임상실험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의 기록은 과학문명의 한계, 삶의 우연성과 불확실성,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들을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특히 최신 외과적 치료법인 뇌심부자극술을 받은뒤 찾아온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해가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이른바 전문가 시스템인 병원, 클리닉이 관례화된 임상과 틀에 박힌 시술을 고수해 개개의 ‘경우’가 지니는 의학적, 심리적, 인간적 특이성을 놓친다는 그의 통찰은 환자에 군림하는 병원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말한다.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내가 더 이상 지적인 사고가 가능하지 않으리라고 다른 이들이 수군거릴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불안 속의 나 자신이었다.” 그의 고백은 지금 병을 앓고 있든 아니든,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우리 모두의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미국 버클리대학과 뉴욕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기센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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