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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주지사 대 상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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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주지사 대 상원의원

입력
2007.09.1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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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 대선 때 민주당 경선에서 텍사스 주지사 출신의 현직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겨룰 후보로서 주지사 출신과 상원의원 출신 중 누가 유리한가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이 논쟁은 미 39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 이래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에 이르기까지 주지사를 지낸 후보가 백악관의 주인이 돼온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미 CIA 출신으로 부통령을 지낸 아버지 조지 부시만 이 대열에서 빠졌다.

기성 정치인들이 이라크 전쟁 결의안에 앞 다퉈 서명할 때 전쟁 반대를 외치면서 인기가 치솟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한 주를 이끄는'소(小)통령'으로서 인력을 운영하고 예산을 집행한 경험이 한 국가를 이끄는 대(大)통령직을 수행하는 데도 밑거름이 된다는 식의 논리를 편 것은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딘은 여기에 '상원의원은 본선에서 필패(必敗)한다'는 주장으로 중앙정치에 낯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유력한 경쟁자인 4선의 상원의원 존 케리 후보를 공격했다.

상원의원은 국정이나 외교 현안에 대한 표결이나 정치적 성향이 낱낱이 노출돼 업무 공개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주지사 출신보다 상대방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논거도 제시됐다.

실제로 딘을 누르고 민주당 후보로 지명 받은 케리 의원은 본선 내내 공화당원의 '플립 플랍(Flip-flopㆍ이랬다 저랬다)'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케리의 일관성 없는 법안 표결 결과를 물고 늘어져 소신 없는 지도자상을 부각하려 한 공화당의 전략은 상당히 주효했다.

물론 미국 선거에서 후보가 주지사냐 상ㆍ하원의원 출신이냐가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카터 이전 상원의원 출신 대통령이 수두룩했다거나 2008년 미국 대선에 나설 민주당과 공화당의 유력한 후보 다수가 상원의원이라는 사실은 주지사 필승론의 한계를 보여준다.

오히려 상원의원 필패론은 선거의 유ㆍ불리보다는 정책 검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측면이 크다. 한 후보가 정치적 행로를 걸으면서 해온 표결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투명하게 언론이나 유권자의 검증대에 오르고 있는 미국적 정치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민선 시장과 도지사 출신이 처음으로 대권에 도전하는 우리 정치판에 미국의 정치현상을 비춰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 같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른 것만으로도 광역단체장의 정치적 비중이 훌쩍 커졌음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이 전 시장이나 대통합민주신당의 손 전 지사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다거나 대통합민주신당의 다른 예비후보들이 국회의원 경력에 장관이나 총리 등 행정가로서의 이력을 보태고 있는 점 등은 미국식의 주지사 필승론이나 상원의원 필패론을 대입할 여지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ㆍ지사로서의 공과나 국회의원의 표결 내용, 장관ㆍ총리 시절의 업무 성과가 후보 검증의 뒷전에 밀려나 있는 점은 정책 검증이 후보 판단의 중심 요소가 되는 미국의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국회의원 경력을 지닌 시ㆍ도지사와 장관ㆍ총리 출신들이 대권을 노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우리 정치사에서 새로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밑도 끝도 없는 폭로전이나 친노니 반노니 하는 패가름보다 후보의 성적에 대한 투명한 심판이 새로운 도전의 주제가 되면 어떨까.

김승일 국제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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