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무대 예술가들의 다양한 재능이 만들어낸 연극 <안데르센 프로젝트> 가 3일간의 짧은 공연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안데르센>
(9월 7~9일 LG아트센터, 로베르 르파주 연출) 2003년 <달의 저편> 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무대 위의 마법사’, ‘이미지 연극의 대가’, ‘현대연극의 혁신가’ 등의 찬사를 받고 있는 르파주의 연출방식이 안데르센의 다채로운 동화와 만나 과연 어떤 이미지 여행을 제공할까 하는 기대로 꽉 차 있었을 것이다. 달의>
어른들을 위한 한 밤의 판타지를 기대하고 극장에 간 관객들이라면 다소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현대의 일상적인 풍경 나열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장황한 독백들로 찬 이 연극은 안데르센의 ‘이야기’가 아니라 안데르센의 ‘생애’에서 발상을 시작하고 있다. 안데르센의 내면을 필터삼아 현대인의 삶의 고독한 편린들을 걸러낸다.
안데르센의 외모 콤플렉스, 어린이 혐오증, 성적정체성의 혼란과 원만치 못했던 여성과의 관계, 마음의 유민으로 북구에서 유럽 본토로 떠돌았던 요소 등은 주요 등장인물 3인(캐나다인 록음악 작사가, 오페라극장 디렉터, 모로코계 이주노동자)에게 고루 배분된다.
그래서 극중 공간은 눈 내리는 <성냥팔이 소녀> 의 거리도 아니고 <인어공주> 의 바다 속도 아닌 대도시 파리의 핍쇼 룸, 공중전화부스, 인터넷 카페, 길거리와 공원, 지하철역 등이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연극엔 등장인물들의 일상적인 욕망이 부유할 뿐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다. 논쟁이나 대화다운 대화도 없다. 남성 배우 이브 자크 1인의 모노드라마로 진행되는 이 연극은 우리들이 현실에서 그렇듯 휴대전화를 부여잡고 혼잣말을 쏟아내고, 애완견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장면처럼 혼잣말과 유사한 대화들로 채워진다.
여기에 연극의 화자 격인 작사가 프레드릭이 음악극으로 구상하는 안데르센 동화 <나무의 요정 드라이아드> 가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염원, 고립감을 우의적으로 환기하면서 사이사이 끼어든다. 나무의>
프로젝션 등의 도움에 의해 재현되는 무대 배경은 배우의 몸과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를 발현한다. 투사된 영상공간을 밟고 있는 배우의 실재하는 육체는, 중력 없는 공간 속의 우주인의 유영처럼 허공 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삶의 중력에 해당하는 소속감과 친밀감을 잃은 현대인의 쓸쓸한 표상을 효과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삶이란 이어져 있다. 별자리처럼. 안데르센이 살았던 19세기 시공간과 내면을 21세기 일상과 이어가는 <안데르센 프로젝트> 는 영상과 연극, 테크놀로지와 인간 또한 잇고 있다. 안데르센>
현대연극이 누릴 수 있는 현란한 실험적 곡예와 자극적인 스펙터클 쇼를 마다하고 인간의 상처와 고독에 집중하는 이 연극은 궁극 나지막이 말한다. “이야기꾼이여, 자기 삶 깊이 뿌리내린 곳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세요.”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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