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의 기적이었다. 고꾸라진 마애불상의 날렵한 콧날이 바닥 암반과 부딪히지 않은 채 멀쩡하게 보존돼 있으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가 5월말 경주 남산 열암곡에서 발견한 통일신라시대 대형 마애불상의 상호(相好ㆍ부처의 얼굴)와 전체 모습이 10일 공개됐다. 발견 당시에는 원래 위치에서 경사면을 따라 앞쪽으로 고꾸라진 채 흙에 파묻혀 있어 어깨와 목 부분만 볼 수 있었으나, 30여일 동안 주변 흙을 파내면서 불상의 상호는 물론 대좌와 양다리, 가슴, 어깨 등 전신이 처음으로 그 자태를 드러냈다.
작은 체구의 성인 한두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구덩이 아래로 들어가 마주본 마애불의 모습은 아찔했다. 앞으로 쓰러진 불상의 육계(肉ㆍ부처의 정수리에서 불룩 솟아오른 부분)가 닿은 바닥 암반과 오똑하게 솟은 불상의 코까지의 거리는 불과 5㎝. 한치만 앞으로 더 밀렸으면 여지없이 바스라졌을 것이 그 손가락 마디만한 거리로 인해 1,300년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다.
무게 약 70톤에 달하는 화강암의 한 면에 양감 있게 새긴 열암곡 마애불상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4.6m, 발 밑 연화대좌가 1m로 전체 높이 5.6m에 이르는 대형 마애불이다. 통통하게 솟아오른 양뺨과 도톰하고 부드러운 입술선 덕분에 온화하고 자애로워 보였지만, 타원형의 얼굴에 아래로 내리뜬 기름한 눈매가 다소 날카로워 엄숙한 인상도 풍겼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머리털이 난 끝선인 발제선(髮際線)에서부터 시작해 어깨에 닿을 정도로 큰 귀. 거대한 크기나 평면적으로 처리돼 있는 점 등이 유사한 예를 찾아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왼쪽 수인(手印ㆍ손모양)은 손바닥을 안쪽으로 해 가슴 위에 얹고 있으며, 오른손 역시 손바닥이 안을 향한 채 아랫배에 대고 있는데, 이 역시 보통의 불상들이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는 것과 구별된다. 신체 비례는 약 4등신으로 머리가 몸에 비해 매우 큰데, 예불하는 사람들이 마애불을 우러러 볼 때의 비례감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화재위원인 최성은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볼륨 있는 상호와 날카로운 눈매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인 엄숙함이 느껴진다”며 “상호와 옷주름 등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 후반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은 “불상의 무게가 70톤에 달해 당장 일으켜 세우기는 어려운 만큼 올 연말까지 와불의 형태로 돌려놓은 후 차차 원래 모양인 입상으로 복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주=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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