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여론조사 1위, '한나라당 꼬리표' 적통성 논란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3선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지사를 성공적으로 지낸 이력이 큰 자랑거리다.
경기고 서울대를 거쳐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딴 엘리트 이미지와 1970년대 민주화운동을 통해 얻는 친 시민사회적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점도 강점이다.
이는 대선 승부처인 중도(보수) 표 흡수력으로 이어진다는 게 캠프의 주장이다. 그는 또 각종 여론조사에서의 ‘범여권 대선 후보 적합도 1위’ 타이틀을 걸어 대세론을 주장한다.
한나라당에 14년 간 몸 담은 전력과 정체성 시비는 손 전 지사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는 3월 “한나라당이 아닌 국민을 위해 순교하겠다”며 한나라당을 탈당, 3개월 만에 범여권에 합류했다. 이어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작업에 적극 참여했지만 범여권 핵심 지지층은 여전히 그를 ‘우리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꼴찌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의 본선 경쟁력을 회의하는 시각도 많다.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경력이 본선에서 효자가 될 것”이라는 논리를 개발하는 등 적통성 논란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수도권(경기 시흥) 출신으로 뚜렷한 지역 기반이 없고 이명박 후보의 ‘경제’에 필적할 만한 대표 브랜드가 없다는 점, TV 토론에 약하다는 점 등도 약점으로 꼽힌다.
■ 정동영- 호남 주자 유일, 1년 넘게 지지율 답보 최대 난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이어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준비된 후보'임을 자임한다. 그는 지난 10여년 간 범여권 지도부에서 대선과 총선 승리를 이끌며 추진력을 검증받았다.
말을 잘하고, 세련되며, 역동적인 대중 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정 전 의장은 국민의 정부 중반 당시 최고 실세였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직접 겨냥한 '정풍운동'으로 일거에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했다. 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그는 17대 총선에서 47석의 초미니 여당을 152석의 거대여당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자신이 지휘한 지난해 5ㆍ31 지방선거에서 우리당이 참패,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유력 대선주자 중 사실상 유일한 호남 출신이란 게 그의 강점이다. 이런 지역색 때문에 범여권이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야당을 이끌 수 있어 총선 공천에 사활이 걸린 현역 의원을 끌어 모으기가 용이하다.
범여권의 화두인 '평화이슈'와 관련해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점도 강점이다. 때문에 '이명박의 청계천 대 정동영의 개성공단'대결로 구도를 잡고 있다.
최대의 난제는 1년 이상 정체된 지지율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냉혹한 평가는 그 중심 축이었던 정 전 의장이 벗어나기 힘든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 이해찬- 참여정부 적자, 강한 親盧색 양날의 칼 가능성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참여정부의 적자(嫡子)다. 재야운동권 출신이면서도 국정 경험이 풍부해‘일 잘하는 정치인’의 전형으로 통한다. 그의 젊은 시절은 투사의 삶이었다.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2번의 옥고를 치렀고, 87년6월항쟁 때는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 실장을 맡아 거리를 누볐다. 13대 총선에서 평민당 공천으로 제도권에 진출한 뒤 전략기획·정책·행정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95년 서울시장 선거, 97년 대선, 2002년 대선 등에서 전략기획파트를 이끌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88년 광주청문회에서‘면도칼 질문’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스타의원으로 부상했고, 5선 의원을 하는 동안 정책위의장만 3번을 지낼 정도로 정책경험이 풍부하다.
또 서울시 부시장과 교육부 장관, 총리 등을 지내는 동안 강한 추진력으로 깊은인상을 남겼다.
그러나‘차떼기당 발언’ 등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언행으로 수차례 논란을 야기했고, 오만과 독선, 옹고집 등의 이미지도 강하다.
지난해에 3·1절 골프 파문으로 낙마한 것을 두고도 여전히“언론이 너무(자신을) 흔들었다”는 입장이다. 강한 친노(親盧) 색채가 대선가도에서는 양날의 칼이 될 가능성도 높다.
■ 한명숙- 흠 없는 홍일점, 대표 브랜드·조직·계파 취약
한명숙 전 총리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겉은 온화해 보이지만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을 광주교도소에서 맞았을 정도로 험난한 세월을 헤쳐 온 강단의 정치인이다. 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 여성운동에 헌신해 재야와 여성계에서 신망이 높다. 깨끗한 이미지도 강점이다.
국정수행 능력 역시 입증된 상태다. 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여성부, 환경부 장관을 지낸 재선 의원이다. 참여정부에서 헌정 사상 첫 ㈋?총리로 무난하게 일을 마쳤다. 업무 파악과 이해 관계 조정 능력, 수평적 리더십이 돋보였다는 평이다.
특히 의원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법 강화 등 개혁 목소리를 높였고 출마 선언 이후에도 교육ㆍ복지 분야에서 개혁적 공약을 내놓았다. 천정배 의원의 컷오프 탈락으로 한 전 총리가 대표적 개혁 주자로 부각될 공간이 마련됐다.
하지만 자신만의 브랜드가 없다는 점은 문제다. 흠 잡을 부분은 없지만 딱히 내세울 내용도 없다는 평이 많기 때문이다.
그를 뒷받침할 조직과 계파, 지역 기반도 뚜렷하지 않다.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비해 친노 세력의 충성도도 약하다. 결국 그는 일반 유권자의 막연한 호감을 자신에 대한 지지표로 돌려놓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 유시민- 盧의 경호실장, 독설로 호감·비호감층 뚜렷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강력한 다크호스로 꼽힌다. 정계 진출 5년 만에 대선에 도전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물불 가리지 않는 독설로 호감ㆍ비호감층이 확연히 구분된다.
운동권 출신인 유 전 장관은 1988년부터 4년 간 이해찬 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독일에 유학을 갔다. 그는 귀국 후 TV시사토론 진행자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2002년 대선 당시 지지율 급락으로 흔들리던 노 후보를 지키겠다며 정치판에 뛰어들어 이듬해 3월 국회의원 재ㆍ보선에 개혁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2004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유 전 장관은 뛰어난 논리와 화술로 확실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복지부 장관 시절엔 노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국민연금 개혁안을 마무리하는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튀는 언행은 업보가 됐다.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 "보수언론은 독극물"처럼 상대방을 극도로 자극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같은 당 동료 의원이 "옳은 소리를 저렇게 싸가지 없이 말한다"고 공개 비판할 정도였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란 별명이 말해 주듯 노 대통령의 그림자는 큰 대선판에선 그에게 짐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양정대 기자 권혁범기자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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