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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조각가 조숙진 20년만에 고국서 설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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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조각가 조숙진 20년만에 고국서 설치전

입력
2007.09.1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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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전시실의 중앙에 거대한 나무 숲이 있다. 이파리는 하나도 없고, 온통 갈색의 나뭇가지들뿐이다. 얼기설기 엉키면서 천장을 향해 쭉쭉 뻗어나가는 나뭇가지들이 어쩐지 하늘을 향해 두 팔 올리고 기도하는 사제의 모습과 닮았다.

숲 한 가운데엔 작은 의자와 어린 목마.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동시에 천진해 보이기도 하는 이 작은 오브제(objet)들을 보는 순간 전율과 함께 어떤 제의 현장과 맞닥뜨린 것 같은 종교적 체험이 순식간에 내면에서 발발한다. ‘이름 없는 신에게’(작품명) 바치는 이 숙연한 아름다움은 숭고미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수명이 다한 폐기들에서 새로운 오브제를 발견해내는 재미 조각가 조숙진씨의 개인전이 30일까지 서울 동숭동에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다. 아르코미술관이 기획한 중진작가 초대전으로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개인전이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지우며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인 주제에 천착해온 이 작가는 버려진 나무들을 주워다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료값이 안 들어 좋겠어요” 물으니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엔 정말 재료 살 돈이 없어서 그랬어요. 대학원(홍익대 미대) 시절 처음 시작한 작업인데, 선생님께서 보시더니 ‘그건 좋은 재료가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안심이 됐어요, 이 작업은 나 말고 아무도 안 하겠구나 하는. 내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이게 좋은 재료라는 걸 보여줘야지 하는 오기 같은 것도 생겼구요.”

그는 “버려진 것들에는 세월이, 인간의 흔적이, 삶과 죽음의 질서가 깊이 배어있는 슬픈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폐기 처분돼 길거리나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있는 나무 조각, 합판, 문짝 같은 것을 주워올 때마다 귀한 생명을 구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뉴욕 첼시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는 절반 가까운 공간이 창고로 사용된다. 일단 재료들을 주워다 창고에 모아두는데, 어떤 재료들은 금세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반면 10년 가까이 창고에 머물다 뒤늦게 호출되는 재료들도 있다. 하얀 벽에 걸린 다섯 개의 창틀과 두 개의 빈 의자가 미니멀리즘의 간결한 구성으로 인지에 충격을 주는 <천국의 창문은 열려 있다> 가 그랬다.

브루클린 강변에서 주워온 나무 창틀과 의자들이 동명의 노래를 듣는 순간 10년 만에 형상으로 구체화됐다. 미국에서 “시간성에 대한 기하학적 승리”라는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은 1996년 한국에서 전시됐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와서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풍문이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묘지의 비석들은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착상한 <비석풍경-존재는 비존재로부터 태어난다> 는 반대의 경우. 구상을 마치자마자 재료를 찾아나섰고, 생각대로 재료가 구해졌다. “재료를 주워 왔다뿐이지 그냥 쓰지는 않아요. 톱으로 드로잉하고, 오일을 바르고, 페인트를 칠하고 일일이 가다듬죠. 주워온 재료들을 그냥 쓰면 정크아트(junk art) 같아서 싫더라구요.”

그렇게 보듬고 쓰다듬은 재료들을 해체할 때 작가의 가슴은 미어진다. 뉴욕 등에 이어 서울에 일곱 번째로 설치된 ‘이름 없는 신에게’도 전시가 끝나면 분리해야 한다. 1주일간 일산 등지를 헤맨 후 이틀간 트럭으로 실어나른 재료들이다. “버릴 수는 없죠. 다시 잘 분해해서 창고에 보관해 둡니다.” 특히 2년 전 전시 2주일을 앞두고 겪은 남동생의 죽음 이후 목마는 그의 상징물이자 수호신으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오브제가 됐다.

작가로서의 성장에 한계를 느껴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간 조숙진은 20년간 미국에서 활동해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미술계에선 조나단 보로프스키 등과 함께 ‘1980년대 이후 세계 조각계를 이끈 40인’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미술잡지 아트투데이에 세계적인 작가 신디 셔먼, 제니 홀저 등과 함께 ‘이 달의 작가’로 소개된 바 있고, 미술 전문지 스컬프처(2006)에 리차드 롱, 조나단 보로프스키 등과 함께 작가론 특집에 선정되기도 했다.

외국에서만큼 한국에 안 알려져 속상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이번엔 방긋이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여기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비슷한 작품이나 반복하며 정체돼 있었을 거예요.” 2001년 영화배우 피터 루이스와 결혼한 그는 아쉽게도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 없다. (02)760-4726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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