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도 섬섬옥수였다. 정교하게 구획하는 붓이 싫어 손가락으로 색을 발라 층층이 쌓는 이 작가의 손은 험하기는커녕 가늘고도 고왔다. 마르기 전 물감은 아가의 살처럼 보드라워 그를 찢지 않는 덕분이다. “내 그림은 몸으로 비벼낸 자취”라고 말하는 그의 그림에선 지문도 그렇게 하나의 질료가 된다.
손가락 그림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오치균(51)이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을 그린 동명의 개인전을 6~26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갖는다. 인상주의 화풍으로 뉴욕과 산타페, 서울의 풍경을 그려온 작가의 탐미주의가 사북의 서럽고도 처연한 정경 속에 아릿하게 피어오른 작품들이다.
“1998년 정선으로 아내와 산나물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사북을 발견했어요. 지나가는데 온통 새까만 마을이 시각적 충격으로 들이닥쳤죠.” 쇠락의 기운이 대기 중에 가득한 폐광촌의 슬레이트 지붕, 그 위에 눈처럼 쌓인 탄가루, 판잣집의 장독대와 그 앞에 죽죽 늘어선 키 큰 해바라기들…. 작가는 그곳에서 이젠 사라져버린, 찢어지게 가난했던 옛 고향의 모습을 발견했다. 무너져내리는 것들의 아름다움이었다.
사북 그림이란 말에 리얼리즘 계열의 민중미술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사북을 수없이 그리도록 ‘사북사태’를 몰랐다고 한다. “만약 알고 그렸더라면 ‘스토리텔링’이 됐겠죠. 나는 색감과 질감으로 얘기하는 화가인데요! 몰라서 이런 작품들을 그릴 수 있었던 거니까,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럽지도 않아요.”(웃음) 여명의 푸르름과 희부윰하게 쌓인 눈을 기조로 해 무한대에 가까운 빛의 변주를 보여주는 그의 사북은 두말없이 아름답다.
오치균은 너무 솔직하게 자신을 까발리는 스타일이어서 그의 화법을 문어체의 평서문으로 옮겨놓는 것은 악의적 모함이 되기 쉽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전 요즘 굉장히 ‘업’ 돼있어요. 왜냐고요? 뜨니까!” 여기서 까르르 터져나오는 그의 웃음과 장난기, 천진한 유머를 걷어내면 그의 말마따나 ‘재수없는 신(scene)’이 연출된다. 더군다나 그는 그림 한 점이 억대에 이르는 이른바 ‘블루칩’ 작가로, 요즘 미술시장의 ‘이슈메이커’ 중 한 명이다.
“제 그림을 좋아해주시는 건 제가 느낀 그대로를 거르지 않고 작품에 쏟아붓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솔직한 그림을 그리려면 삶과 사람 자체가 솔직해야 하죠. 세상은 그림은 자유롭고 솔직하길 바라면서 사람은 모범적이고 순종적이길 바라는데, 그건 모순이에요.” 솔직한 것은 때때로 타인을 할퀴는 흉기도 되는 탓에 그는 사람 만나기를 꺼린다고 했다. 가까이 지내는 대학(서울대 미대) 동문 출신 화우가 있는지 물으니 그의 대답, “한 명도 없어요!”
그림 외의 유일한 취미인 운동 덕분에 그는 액션영화의 ‘히어로’ 못지않은 근육질의 몸매를 갖게 됐다. 작고 마른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7년간 트레이닝한 결과다. 짧은 머리에 영화 <빠삐용> 에 감동받아 시술받은 나비 문신까지 더해져 자주 술집 기도나 조폭으로 오해 받는다는 그. “제가 혐오감을 주는 자로 분류돼 하이클래스 목욕탕이나 골프장 같은 데를 못 가요. 하지만 전 그런 오해가 너무 즐거워요.” 빠삐용>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이례적으로 모두 비매(非賣)다. 해외전시가 예정돼 있는데다 블루칩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풀었을 때 시장에 줄 충격을 감안했다. “모두 비매니까 이게 얼마짜리인지 생각하지 마시고 오셔서 실컷 구경하세요.” 전시는 무료다. (02)734-6111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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