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층 인사들이 관련된 의혹 사건들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에 이어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건설업자를 둘러싼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이 연관된 비리가 터지더니 대통령 선거를 100여일 앞둔 정권 말기에 또다시 이런저런 의혹이 불거지는게 심상치 않다. 노 대통령은 ‘깜도 안되는 의혹’이라고 일축했지만, 작은 의혹이 정국을 뒤흔들었던 과거 사례를 떠올리면 ‘깜’도 안된다고 마냥 치부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각종 의혹 사건이 불거지면서 그 중심에 선 당사자들 못지 않게 바빠진 사람이 대변인(代辯人)들이다. 변 실장은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신정아씨 학력 위조 문제를 처음 제기한 장윤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대변인을 통해 각자의 입장을 전하고 있다. 정 전 비서관도 청와대 의전비서관 시절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에 사건 초기 천 대변인이 해명성 브리핑을 했다.
대변인이 소속 기관이나 단체, 또는 어느 특정 인사의 입장을 제대로 알리려면 누구보다 관련 사안의 내용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기본적인 업무 파악은 물론 돌발 사건 발생시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파생된 위기 상황까지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또 언론의 존재 이유와 속성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이 전개될 양상을 예측하고 언론이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도록 배경 설명과 입장을 밝힐 수 있다. 나쁘게 뒤집어 말하면, 대변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사실의 은폐나 왜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의혹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나오는 대변인들의 해명은 답답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적어도 국민과 독자들에게 사건의 진상을 알려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납득이 안될 만큼 불충분한 설명은 궁금증을 낳기 마련이다. 기자들이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 의혹 해소나 사태 종결은 요원한 일이다. ‘뭔가 숨기는 게 있다’거나 ‘도무지 설명의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남게 되면 기자의 본능적 야성(野性)은 더 강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부 부처나 산하 기관, 각종 단체, 심지어 기업에서 기자의 머리 속에 의문부호를 남기지 않는 대변인이나 홍보담당자를 찾기란 힘들다. 왜 그럴까.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대변인이나 홍보담당자를 언론의 감시와 비판으로부터 조직과 구성원을 보호하는 방패막이쯤으로 치부하는 조직 문화에 있다.
조직의 수장이나 실력자가 언론에 대한 기본개념조차 없거나 왜곡된 언론관을 갖고 있다면 대변인의 역할과 기능은 더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언론에게 가장 최악의 경우가 당사자들은 대변인 뒤에 숨어버리고 대변인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말만 이어가는, 요즘과 같은 상황이다.
대변인을 사이에 두고 전개되는 ‘의혹의 숨바꼭질’은 의혹 당사자나 언론 모두에게 답답함만 안겨줄 뿐이다.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책임 없는 발언만 늘어놓는 대변인에게 의혹 해명의 책무를 위임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는 것이 낫다. 그것도 싫다면 대변인에게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말해주고 다 공개하도록 해야 옳다. 그것이 브리핑 활성화를 내건 이 정권의 ‘신 언론통제 정책’과도 부합하는 일 아닐까.
황상진 사회부장 apr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