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9세인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20세기 최고 기독교 복음전도사로 꼽힌다. 전세계 6대주에 걸쳐 무려 2억1,000만명이 그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었다.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 전도집회에는 100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청중이 모인 전도집회로 기록됐다.
공산권 국가 선교에도 열심이었던 그는 1988년 중국 베이징에서 복음전도 집회를 가졌다.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를 비롯해서 수많은 도시를 순회했고 북한의 평양도 두 차례나 방문, 군중 집회를 열어 복음을 전했다.
▦ 1992년 평양 방문 당시 김일성 주석에게 직접 성경을 선물하는 사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2년 후인 94년 그의 두 번째 방북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물꼬를 텄고 결국 카터-김일성 면담을 통한 북핵 1차 위기 타개에 기여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 폭격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었을 때였으니 한반도가 다시 한번 전쟁의 참화에 빠져들 뻔했던 상황을 막은 셈이다.
6월에 타계한 부인 루스 그레이엄 여사는 중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의 딸로 평양의 미션스쿨인 숭실학교를 다녔는데 생전 김 주석의 초청으로 1997년 평양을 방문했다.
▦ 최근 한국전쟁 후 최초로 민항기를 통해 북한에 긴급 수해구호 물품을 준 미국 구호단체 ‘사마리탄스 퍼스’(Samaritan’s Purse)의 프랭클린 그레이엄 회장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이다.
그도 2000년에 평양을 방문했다. 이 집안과 북한의 인연은 각별한 데가 있다. 사마리탄스 퍼스는 전쟁 난민과 자연재해 난민들에게 기초생필품을 지원해오고 있다. 북한에 제공한 구호품은 항생제와 수인성 질병 예방약 등 의약품과, 정수장치 담요 등 800만달러(약 75억원) 어치라고 한다. 미국 정부가 지원한 5만달러 어치의 물품도 포함됐다.
▦ 사마리탄스 퍼스의 신속한 대북 수해복구 지원은 그레이엄 회장 일가와 북한의 인연을 감안한다 해도 매우 이례적이다. 국제사회의 다른 구호단체들도 경쟁적으로 대북 지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지하 핵 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지원이 뚝 끊겼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엿보이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북한 당국으로서도 생각되는 바가 많을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이 언제까지 외부의 지원으로 연명해야 하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우울해진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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