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을 팔아 넘기고 차액을 챙겨서 하루빨리 한국을 빠져나가려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우리 정부간 기싸움이 시작됐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 끌기 밖에 없는데, 정부의 매각승인(대주주 적격성 승인)이 내년 4월30일을 넘길 지가 관건이다. 2008년 4월 30일은 론스타와 HSBC가 인수작업을 완료하기로 합의한 날. 이 시점을 넘기면 계약 해지도 가능하다. 때문에 정부가 그 시점을 넘겨 매각 승인을 늦추는 장기화 전략을 취할 경우, 사실상 HSBC의 외환은행 인수를 저지하겠다는 의지로 읽힐 수 있다.
■ 정부의 시간끌기, 언제까지 가능한가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1심 판결만 받아보고 승인할지, 최장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보고 승인할지 결정해야 한다
. 금감위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으면 승인결정을 할 수 없다”며 최종심 판결까지 염두에 둔 발언을 하고 있지만, 심급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고심 중인 것이다.
만약 1심 판결 후 승인에 나선다면 론스타와 HSBC의 계산대로 내년 4월 전후 외환은행은 HSBC의 손으로 완전히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1~2년 이상 걸리는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 사이 외환은행 주가가 뛰게 될 것이 분명하고, 론스타는 HSBC와 재계약을 통해서건 새로운 상대를 물색해서건 주당 매각대금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계약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금감위는 1심 판결 내용을 보고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무죄(정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한 것은 문제가 없었다)냐, 유죄(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 문제가 있었다)냐에 따라 금감위는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는 게 과연 효율적인 것인지, 국내 여론의 방향은 어떻지, 그리고 해외자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를 종합해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 다시 들끓는 여론… 시간끌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여론은 다시 들끓고 있다. 헐값에 외환은행을 사들여, 세금 한푼 내지 않은 채 막대한 차익을 챙겨 떠나는데 대한 ‘먹튀’ 논란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고 직접 나서 주식을 매각해 외환은행을 처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본부도 “HSBC가 체포영장이 발부된 론스타 측 인사들과 외환은행 인수에 합의한 것은 대한민국을 모독한 행위”라며 “정기국회에서 법사위의 특별조치 결의안과 재매각 중지명령 촉구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실 ‘시간끌기’만으로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아치우고 차액을 손에 쥔 채 한국을 떠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법원이“정부가 과거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승인을 잘못 내줬다”고 판결한다고 해도, 론스타에게는 외환은행 주식 매각명령만 내려질 뿐이어서 크게 불리할 것이 없다. 차익을 환수한다던가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시간끌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국내 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정도다. 이 경우, 정부는 국제금융계로부터 ‘국수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은 정부로 넘어왔고, 정부는 이제부터 미묘하고 복잡한 ‘방정식 풀이’에 들어갈 참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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