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부터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개막된 제12회 삼성화재배 본선은 세계 바둑대회 사상 처음으로 ‘상대 선수 지명제’를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상대 선수 지명제’란 예선을 통해 본선에 오른 16명의 선수가 시드를 받은 16명의 ‘강자’ 가운데서 자기와 싸울 상대를 지명하는 방식이다.
현재 ‘K1’이나 스타크래프트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바둑에서는 처음 도입된 방식이어서 각국 프로기사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많은 관심이 쏠렸다.
3일 밤 열린 본선 전야제에서 예선 통과자 16명은 추첨 순번에 따라 상대 선수를 지명했는데, 1번의 ‘행운’을 안은 허영호가 ‘외국 선수 가운데 가장 자신 있는 상대’라며 일본의 야마시타 케이고를 지명했다.
그러자 야마시타는 다소 쑥스러운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와 “내가 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어 2번 강동윤은 서봉수, 3번 콩지에는 유창혁, 4번 대만 출신으로 일본기원에서 활동하는 황이주는 이창호를 각각 지명했다. 예상보다 일찍 지명을 당한 이창호는 사회자가 소감을 묻자 아무 말 없이 그냥 뜻 모를 미소만 지었다.
한국의 신예 김기용과 한상훈은 각각 조치훈과 마샤오춘을 택했는데 김기용이 “평소 존경하는 사범님과 두고 싶다”고 하자 조치훈은 “존경한다면 한 판 져 줘야지”라고 조크를 날리기도 했다.
이세돌은 아홉 번째로 중국의 신예 장웨이에게 지명 당했다. 장웨이는 “특별히 약한 상대가 없으므로 기왕이면 강자에게 한 수 배우고 싶다”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이어서 최철한 박영훈 조한승이 각각 황이중 리캉 박문요 등 중국 선수들에게 잇달아 지명됐고 목진석은 후야오위를 선택했다.
특히 이번에 신설된 여자부 예선 통과자인 김혜민과 조혜연이 나란히 맨 뒤 순번을 뽑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김혜민이 ‘용감히’ 전년도 우승자 창하오를 선택했고, 맨 마지막 순서인 조혜연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중국 랭킹 1위 구리와 만나게 됐다.
각국 선수들의 상대 지명 결과를 보면 한국 기사들은 대체적으로 실리를 택했고 외국 기사들은 명분을 택했다는 평이다. 한국 기사들이 일반적으로 약체로 평가 받는 일본 기사들을 선점한 반면 외국 기사들은 한국 기사 가운데 이창호를 두 번째, 이세돌을 세 번째로 지명하는 등 다소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국 랭킹 1, 2위가 비교적 초반에 지명된 반면 중국의 강자 창하오는 구리는 모두들 기피해 맨 마지막까지 남았다. 이 밖에 한국의 시드 배정자 중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백홍석이 뜻밖에 아무에게도 지명 받지 못하고 거의 마지막까지 남았던 점이 특이하다. 삼성화재배는 4일 32강전에 이어 6일 16강전이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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