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만족합니다. 내게 더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으니까요.”
당당한 패자였다. 세계랭킹 4위의 높은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2시간에 걸친 사투를 끝낸 뒤 편안히 미소 짓는 여유는 잊지 않았다. 0-3의 완패였지만 루이 암스트롱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박수갈채는 상당 부분 ‘아시아의 자존심’ 이형택(31ㆍ삼성증권)에게 돌아갔다.
세계랭킹 43위 이형택은 4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올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 남자단식 16강전에서 러시아의 톱랭커 니콜라이 다비덴코(4위)에 0-3(1-6 3-6 4-6)으로 완패했다. 7년 전 US오픈 16강 신화를 이룩했던 이형택은 다비덴코를 넘어서면 자신의 메이저대회 최고 성적인 8강에 오를 수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변명의 여지 없는 완패였지만 오히려 이형택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다비덴코가 너무 잘했다”면서 “이번 대회 성적에 만족한다. 내가 앞으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줬기 때문이다”며 도전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형택이 깨끗이 패배를 인정할 만큼 다비덴코는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쳤다. 다비덴코가 31개의 결정구를 날린 반면 이형택은 13개에 그쳤다. 네트 접근 공격에서도 80% 성공률을 보이며 50%에 그친 이형택을 압도했다.
이형택으로서는 초반 기싸움에서 밀린 것이 아쉬웠다. 첫 게임을 따낸 뒤 내리 7경기를 내주는 일방적인 열세가 이어졌다. 3세트에 뒷심을 발휘해서 게임스코어 4-4까지 팽팽히 맞섰으나 9번째 서브 게임을 잡히면서 무릎을 꿇었다.
비록 16강에 머물렀지만 이형택은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세계 무대에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외신들은 노장 이형택이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US오픈 16강에 오른 것을 비중 있게 전했다. 랭킹 포인트 150점과 상금 7만2,000달러를 획득한 이형택은 내주 발표되는 세계랭킹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인 36위를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형택은 10일부터 시작되는 중국오픈에 출전하기 위해 오는 5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한편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1위ㆍ스위스)는 펠리치아노 로페스(스페인)에 3-1(3-6 6-4 6-1 6-4)로 역전승을 거두고 8강에 합류했다. 페더러는 세계랭킹 5위인 '광서버' 앤디 로딕(미국)과 4강 티켓을 놓고 격돌하게 됐다.
김기범 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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