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은 밉상이었다. 시사회 무대인사에서 처음 본 장근석(20)의 모습은 비호감이었다. 꽉 끼는 까만 정장, 애써 짓는 반항적인 표정이 ‘완소훈남’의 이미지를 벗으려는 계산된 몸짓으로만 보였다. 어깨 축 처진 40대를 위한 유쾌한 푸닥거리 같은 영화 <즐거운 인생> 에, 그는 이준익 감독이 쳐 놓은 양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즐거운>
하지만 필름이 30분쯤 돌아가고 그가 노래를 부르는 첫번째 장면에서 생각이 뒤집혔다. 시트콤 배우로만 알았던 스무 살짜리의 어깨에서, 그룹 오아시스의 노엘 겔러거 같은 포스가 뿜어져 나올 줄이야. 수건을 꺼내 안경을 닦고, 옆자리에서 졸던 모 배급사 관계자를 흔들어 깨웠다. “쟤 좀 봐요. 죽인다, 죽여!”
아직 곱살스러운 외모와 달리 장근석은 상당히 어른스럽다. 나이가 곱절로 많은 선배들이 부담스럽지 않았냐고 묻자, 돌아온 그의 대답이 이랬다. “상대 배우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까, 그러면서도 팀워크를 깨지 않을까, 그걸 고민해야죠.”
애늙은이 같은 그의 생각은 영화의 흐름을 조절할 정도로 깊다. “내 배역인 현준이 별다른 설명 없이 죽은 아버지의 친구들과 밴드를 한다는 게 비약으로 느껴졌어요. 현준은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말씀 드려 술집 화장실 신을 넣자고 했죠. 혁수(김상호) 아저씨가 옆에서 오줌을 누면서 ‘이 자식, 너도 네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구나’ 그러잖아요. 미워하던 아버지의 존재를 서서히 받아들이는 모습. 그건 제가 욕심을 내 넣은 장면이에요.”
리얼한 연주 장면을 담기 위해 그는 세 선배(정진영, 김윤석, 김상호)와 함께 촬영 기간 동안 합숙을 했다. “밴드가 원래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이 호흡이 맞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예 밥 먹고 잠자는 것도 함께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촬영하고, 촬영 끝나면 같이 숙소로 ‘퇴근’하고, 술도 함께 마시고… 세대 차이를 느낄 틈이 없었죠.” 사실 내러티브가 뻔한 이 영화에 감칠맛을 내는 것은 네 배우가 빚어낸 록음악. 장근석은 그 록밴드를 이끄는 리드 보컬로서 결코 주눅들지 않는 파워를 보여 준다.
그는 이번 영화를 ‘밀키보이’ 이미지로부터 탈피하는 계기로 삼고 싶은 듯했다. 어떤 질문에도 거침 없던 그가 시트콤이나 트렌디 드라마를 다시 할 계획이 있냐고 묻자 뜸을 들였다. “글쎄요…. 저는 연예인이라는 말보다 배우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좋아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가시처럼, 냉혈한의 캐릭터에 끌리더라구요.”
또래 연예인들처럼 기획사가 ‘세팅’해 놓은 편한 길을 갈 뜻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당돌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성격이 원래 대담하냐구요? 아직 어리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요. 하하하.” <왕의 남자> 에서 이준기라는 스타를 캐 냈던 이준익 감독, 이번 작품에서는 장근석이라는 ‘물건’을 찾은 듯하다. 왕의>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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