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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8>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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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8>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입력
2007.09.05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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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아침 9시 반부터 10시까지 나는 장루이지에(張瑞杰) 대사와 댜오위타이(釣魚臺) 11루에서 18루로 연결되는 순환로를 따라 산보를 했다. 나는 차기회담 장소로 서울을 제안했다. 수교회담이 한국에서도 개최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장 대사는 “가겠다”고 명쾌히 수락했다.

나는 정상회담을 통한 수교방식의 가능성을 물었다. 장 대사는 이 방식은 보안상 문제가 있다고 반대하고 수교와 동시에 정상회담 일정을 포함하여 발표한 뒤 가까운 시일 내 정상회담을 갖는 방식이 좋다고 했다. 우리는 서울회의에서 수교에 관한 문안을 확정짓자고 의견을 모았다.

오전 10시 동해사업 제2차 예비회담 제3차 회의가 열렸다. 장루이지에 대사는 한국측이 ‘대만은 중국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분이다’라는 서술을 받아주기를 희망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중국측은 한국이 대만과의 공식 외교관계를 단절한 이후 두 가지 문제 즉 대만 민간대표부에 대한 명칭, 그리고 한국과 대만 간 항공협정폐기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

나는 중국의 원칙적 입장을 받은 이상 한국은 대만과 최상의 비공식관계를 알아서 가질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실무적인 문제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하겠다는 얘기였다.

우리측은 대만재산 처리와 베이징 한국대사관 및 한국학교 부지 확보문제를 연계했다. 베이징에 한국대사관과 한국학교 부지를 마련하는데 호의적인 배려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중국측은 처음에는 서울의 대만재산 문제와 한국대사관 부지 배려는 성질이 같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곧 상대방의 수도에 대사관을 개설하면 도와주어야 하는 게 호혜쌍방(상호주의) 원칙이라고 하고 대만의 재산처분을 적극 막아달라고 말했다.

나는 “한국도 베이징에 대사관을 설치하려면 넓은 땅이 필요한바 역사적 관계나 양국 관계를 감안, 대국적 견지에서 고려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실무적 문제만 남았다.

우리측은 양국 국민의 불편을 조속히 덜어주기 위해 항공회담의 조기개최를 촉구했다.

특히 중국의 전세항공기는 한국의 수도에 취항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전세기는 톈진(天津)과 상하이(上海) 등 2개 지방도시에 취항하고 있는 불공평한 상태를 바로 잡기 위해 수교 전에라도 항공사 및 정부 간 협의를 진행시키자고 제안했다.

중국측은 이는 실무적 문제로 국교정상화가 되면 쉽게 해결될 것이며 한국항공기의 베이징 취항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정상회담을 통한 수교방식을 거듭 제안했다.

중국측은 이 사안을 상부에 보고했으며 수교방식과 발표문제는 최고지도자가 결정하는 사안이어서 당장 대답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우리는 이어 차기회담을 수석대표가 참석하는 본회담으로 하여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중국은 자국 수석대표에게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이제 같은 배를 타고 간다는 기분이다”라고 언급하자 장 대사는 “벌써 한 배에 올라탔다”고 화답을 해왔다.

우리 측은 서울회담은 6월13(토), 14일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울에서도 보안은 문제가 없을 것임을 단언했다. 중국은 우리의 의사를 받아들이면서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는 뜻을 보였다. 우리는 6월20, 21일도 괜찮다는 의사를 전했다. 주요문제는 거의 타결이 되었다.

다음 회의에서 문안정리만 잘하면 수교의 길을 트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아직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정상회담과 중국의 한국전 참전 문제였다. 나는 수석대표간 비공식 대담을 다시 청했다. 오후 6시부터 약 70분간 12호각 1층 응접실에서 장 대사와 단독으로 만났다.

먼저 정상회담을 다시 간곡히 촉구했다. 장 대사는 이 문제는 최고지도자에게 이미 보고가 끝났고 검토지시가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한국전에 중국이 참전한 문제와 관련, 수교합의서 또는 다른 형식으로라도 유감을 표명해주기를 요청했다. 한국국민의 정서상 이 문제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장 대사는 참전에 관하여는 각자 입장이 있음을 이미 밝힌 바 있다고 강조하고,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 중국측도 입장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없고 이 경우에는 서로가 논쟁으로 발전하여 이러한 논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장시간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 부분을 수교과정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대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교교섭의 책임자로서 만약 그때 중국의 참전 실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면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제시, 보다 명확한 해명과 유감을 표명하도록 중국 대표들에게 요구하고 설득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국민들에게 죄송한 부분이 있다. 대한제국이 중국주재 공사관 부지를 고종황제의 내탕금으로 베兼?동교 민항에 구입했던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고 교섭에 임했던 것은 나의 준비 부족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중국주재대사 시절에 뒤늦게 알고 현장을 여러 번 답사하면서 수교교섭 때 내가 부족했던 점을 후회하고 반성하곤 했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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