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작가 오천룡(66) 화백과 40여년간 그의 그림을 수집해온 경기고 친구들이 4일 모였다. 오 화백의 친구들이 그 동안 모은 89점의 소장작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LM에서 7~15일 열기로 한 것. 국제변호사인 김창세 제일광장 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박재휘 PACAT GmbH 대표, 서민석 동일그룹 회장, 이영서 SNF 회장이 그의 친구들이다.
김 대표가 직접 기획하고 비용을 댄 이번 전시엔 그가 소장하고 있는 오 화백의 그림 57점과 박 대표 소장작 13점, 서 회장이 갖고 있는 10점, 이 회장 소장 9점이 출품됐다. “그동안 이렇게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보고하기 위해 전시회를 기획한 만큼 작품 판매는 일절 하지 않는다.
오 화백이 그림을 강매한 거냐고 묻자 “오히려 저희가 그림을 훔쳐온 셈”이라며 빙그레 웃는다. 박 회장은 “가끔 너무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다른 데로 ‘시집’ 갈까 봐 완성되기도 전에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미술에 문외한이었다던 친구들의 그림 수집은 오 화백이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후 파리국립미술학교로 유학을 가면서 시작됐다. 먼저 독일로 유학을 가 있던 박 회장이 반가운 마음에 파리로 달려가 오 화백을 만났는데, 작업실에서 그의 작품을 보곤 홀딱 반한 것.
‘무리해서’ 작품 하나를 구입한 후 그의 평생 컬렉터가 됐다. 이 회장은 무역회사 직원이었던 1974년 유럽 출장을 갔다가 오 화백의 집 복도 구석에 걸린 <센강 강둑 풍경> 을 보고 출장비를 덜어 그림을 사갔고, 서 대표는 79년 작가의 첫 서울 전시회에서 그의 컬렉터로 이름을 올렸다. 센강>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김 대표는 88년 독일로 출장을 갔다가 그곳에서 열린 오 화백의 전시를 보고 뒤늦게 그의 맹렬한 팬이 됐다. “다른 화가한테는 관심 없습니다. 오로지 오 화백의 그림만 모읍니다. 가까이서 친구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켜보는 게 저한테는 오 화백의 삶을 훔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이들 친구의 ‘지원 아닌 지원’ 덕분에 오 화백은 평생 크게 돈 걱정 하지 않고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20대 후반의 넉넉하지 않던 시절부터 저를 응원해준 친구들 덕분에 다른 데 한눈 팔지 않고 그림만 그릴 수 있었으니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지요.”
참을 수 없는 세속의 질문을 던졌다. 친구들인데 가격 흥정은 잘 되나요? “모두 정찰제입니다. 이 친구들, 많다 적다 말이 없어요. 선물로 그림을 줘도 기어이 그림 값을 치르고 마는 사람들이니.”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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