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가 2일 제네바에서 끝난 양자간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연내 핵시설 불능화 및 전면적 핵프로그램 신고'에 합의함으로써 북핵 문제해결의 새로운 단계 진입이 가시화했다.
영변 원자로 등의 가동중단 및 폐쇄, 즉 '핵 동결'은 과거 제네바 기본합의를 통해서도 도달한 바 있으나 이를 넘어 재가동을 막기위한 불능화를 실천한다는 것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따라서 북미의 약속이 지켜질 경우, 그 조치가 궁극적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북미는 비핵화 실무그룹 회의가 아닌 관계정상화 실무회의에서 이 같은 합의를 서둘러 기정 사실화함으로써 양쪽 모두 연내 불능화와 그에 따른 보상책 제공 등에 적극적 의지를 갖고 있음을 부각시켰다.
따라서 실제로 연내에 어떤 수준에서든 불능화가 이뤄지고 북미가 이를 통해 협상의 동력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매우 높다.
그러나 양측 수석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ㆍ태 차관보와 김계관 북 외무성 부상의 말을 종합할 때 이런 총론적 전망이 세부적 각론에 의해 뒷받침되는 단계는 아직 아닌 것 같다.
힐 차관보는 불능화 대상에 영변 원자로 이외에 어떤 시설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회피함으로써 불능화의 대상 및 범위, 개념 등에 대해선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북핵 '2ㆍ13 합의'의 문안에 따르면 불능화의 대상은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이라고 돼 있으나 북미간 논의가 이 단계로까지 진전됐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가장 손쉬운 것이 이미 가동 중단된 영변 원자로와 폐연료봉 재처리시설 등을 포함한 5개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것일 텐데 이들 모두가 불능화 대상인지, 아니면 일부만 불능화할 것인지도 현재로선 명확하지가 않다.
불능화 문제를 핵프로그램 신고 문제와 연결시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북한이 모든 핵프로그램에 관해 성실하게 신고하면 그만큼 불능화의 대상은 늘어난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실체가 드러나면 이를 위해 사용된 원심분리기 등이 불능화 대상에 포함돼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및 핵물질이 이번에 합의된 전면적 신고 대상에 포함되는지는 극히 불투명한데 북한이 핵무기까지 신고하고 이와 관련된 장비를 불능화 대상에 올릴 가능성은 현재로선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하면 북핵 신고와 불능화는 실행에 옮겨지더라도 북한이 의도한 대로, 2,3단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여러 단계로 나눠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그때마다 보상책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연내 불능화가 이뤄진다면 현재로선 북한이 수용하기가 용이한 비교적 기초적 단계에서 진행되는 시범적 불능화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