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덴서 케이스 제작업체 디엔텍의 인터넷 홈페이지(www.dn-tech.co.kr)를 열어보면 누구나 잠시 주춤하게 된다.
한국 업체임이 분명하지만 마치 외국 회사의 홈페이지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초기 화면에서 사용할 언어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한국어가 없기 때문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만으로 만들어진 디엔텍의 홈페이지는 이 회사의 기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디엔텍은 세계 최대의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 제작업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세계 콘덴서 시장의 절반을 점령하고 있는 일본시장 점유율이 12%에 달한다.
제품별로 따지면 아날로그 전자제품에 주로 사용되는 일반 알루미늄 콘덴서용 케이스는 세계 시장의 10~15%, 디지털 제품에 사용되는 칩 모양의 콘덴서 케이스는 30%를 차지하고 있다.
■ 무조건 차별화하라
현재 디엔텍의 주력 상품은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를 엷게 씌운 칩형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다. 디엔텍이 직접 개발해 발명특허까지 얻은 것으로 이 제품 안에는 오늘의 디엔텍이 있게 된 원동력인 철저한 차별화 전략이 숨어 있다.
1985년 9명의 사원으로 설립된 디엔텍은 90년대 중반까지 나일론을 씌운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를 만들어 왔다. 일본에서 개발된 이 모델은 이미 일본 업체들이 시장의 상당부분을 점유하고 있었고, 나일론 원료를 일본에서 전량 수입해야 하는 탓에 이익도 적었다. 나일론은 고열에 약하고, 인체에도 좋지 않은 소재였다.
디엔텍은 나일론 소재로는 경쟁 업체들을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 99년 신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대체 소재 연구를 거듭하다 PET를 찾아냈다. 일본 기업이 기술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짓고 포기한 소재였다.
하지만 디엔텍은 개발 시작 3년 만인 2002년 대량 양산을 시작했고, 발명특허까지 얻었다. PET를 씌운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는 현재 일본과 동남아 시장을 점령, 디엔텍 매출의 69%(2006년)를 차지한다. 올해엔 점유율을 79%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 뛰면서 생각한다
디엔텍이 PET를 사용한 콘덴서 케이스를 개발했지만 일본 콘덴서 제작업체들은 여전히 나일론 제품 사용만을 고집했다. 디엔텍의 기술력을 믿지 못한데다 일본 업체들이 개발을 포기한 소재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외국 기업들을 상대로 디엔텍이 PET 콘덴서 케이스를 판매할 수 있던 것은 저돌적인 영업전략 덕이었다.
2003년 4월 디엔텍 김용래 사장 일행은 PET 콘덴서 케이스 샘플을 들고 무작정 일본의 콘덴서 제작업체 니치콘 공장을 찾아갔다. 니치콘은 세계 최대의 콘덴서 제작업체로 PET 제품을 이 업체에 팔면 매출확대는 물론 제품 성능을 시장에서 인정 받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어렵사리 공장장을 만나 제품을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공장장은 제품을 보지도 않고 “일본 것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으며 PET 소재는 이미 1년 전에 사용 안 하기로 결론이 났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곧바로 교토에 있는 니치콘 본사를 찾아가 사장을 만났다. 그들은 “니치콘이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 업체가 이미 사용하고 있다”며 설득했다. 김 사장 일행은 간신히 “공장장이 검토해 본다”는 약속을 얻어냈고, 니치콘은 1년 뒤 디엔텍 제품을 사용하기로 했다.
■ 맥가이버식 사고방식
디엔텍은 2003년부터 온돌바닥을 빠른 시간 내에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에너지확산 매트’와 인테리어용 타일의 일종인 ‘럭스타일’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콘덴서 케이스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콘덴서 케이스를 제작하고 남은 재료와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낸 상품이다. 김 사장은 “쓸모 없어 보이는 물건을 잘 이용하는 맥가이버처럼 생각한 끝에 만들어 낸 것들”이라고 말했다.
에너지확산 매트는 알루미늄 판으로 만든다. 콘덴서 케이스는 원형의 알루미늄 조각으로 만드는데, 사각형 모양의 알루미늄 판에서 원형의 조각들을 잘라내고 나면 남은 알루미늄은 쓸모가 없어진다.
디앤텍은 알루미늄의 열 전도율이 높다는 것에 착안해 원형 구멍이 수없이 뚫려 있는 알루미늄 판을 온돌 시공에 사용할 수 있는 건축 자제로 탈바꿈 시켰다.
럭스타일은 PET를 알루미늄에 씌우는 기술을 사용했다. 같은 색의 PET라 하더라도 씌우는 법을 달리하면 다른 광채가 난다는 것에 착안했다. 이 타일은 서울의 유명 레스토랑 등에 사용되는 등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디엔텍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에너지확산 매트와 럭스타일 제작부문을 하나의 사업영역으로 묶어 콘덴서 케이스 영역과 함께 사업의 양 축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알루미늄 공장을 세워 원자재를 직접 공급할 꿈도 갖고 있다. 또 알루미늄 외에 합금을 이용한 콘덴서 케이스 개발과 이르면 2008년 코스닥에 상장할 준비도 하고 있다.
김 사장은 “디엔텍은 봄이 오면 여름을 대비하고 여름에는 가을을 생각한다”며 “우리만의 아이디어와 기술로 디엔텍의 진화론을 써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 김용래 사장 "최후의 목표는 비행기 제작"
김용래(51) 디엔텍 사장에게는 뒤로 미뤄놓은 꿈이 하나 있다.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를 만들어 팔게 된 것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다. 꿈은 다름 아닌 비행기를 만드는 것.
비행기 소재인 알루미늄을 공부하기 위해 5년만 해보겠다며 시작한 사업을 23년째 이어오고 있지만 김 사장은 아직 이 꿈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
김 사장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재학 시절 사업을 계획했다. 그에게 건축은 지루했다. “농업 등 1차 산업을 하기엔 우리나라 땅 덩어리가 너무 작고, 서비스 산업은 당시에는 사기꾼들이나 하는 일 같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래서 제조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제품 한 개를 팔아서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비행기를 선택했다.
김 사장은 대학 졸업 후 28세 때 “비행기의 소재인 알루미늄을 정복하겠다”며 디엔텍을 설립했다. 창업 3년 후 제작 공정을 개선해 콘덴서 케이스 제조 원가를 30%나 줄이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김 사장은 비행기 제작을 뒤로 미뤘다.
그는 “콘덴서 케이스 제작 사업에 인생을 걸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며 “이를 위해 모든 아이디어, 기술 등을 전부 바쳤다”고 말했다. 현재 디엔텍이 갖고 있는 9건의 특허는 모두 이런 김 사장의 노력이 밑바탕이 됐다.
김 사장은 아직 알루미늄 콘덴서 케이스 사업에서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모두 쉽게 이루기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는 비행기 제작이라는 당초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아닌 후임자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고 털어 놓았다. 김 사장의 가슴 속에는 그가 정복하겠다고 나섰던 알루미늄으로 만든 비행기가 23년째 날고 있다.
최영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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