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매각 논란 등에 휩싸여 장기 표류해온 외환은행 재매각 문제가 새 국면을 맞았다. 한 달여 전부터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국 언론들이 영국계 은행인 HSBC를 유력한 새 인수자로 지목하더니, 어제 HSBC는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 51%를 63억 달러에 산다고 전격 발표했다. 거래 완료일로 설정한 내년 1월말까지 한국 금융당국의 승인을 비롯한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외환은행 매각 및 재매각의 적법성을 둘러싼 재판의 진행상황과 우리 정부의 태도, 국민감정 등을 탐색해오던 유럽 최대 은행이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여러 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아시아영업망 확대를 노리는 HSBC 입장에선 뛰어난 인적 자원과 네트웍을 가진 외환은행이 더없이 좋은 매물인 데다, 자신들의 이미지라면 한국인들의 거부감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울러 올해 말로 예상되는 1심 판결에 대한 나름의 판단을 바탕으로 매물을 선점하는 효과도 노린 것 같다.
그러나 HSBC의 의도와 판단이 어떻든 우리 정부는 엄정한 태도와 공정한 잣대를 유지해야 한다. 지난 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이 법원에서 인정돼 당국의 주식취득 승인이 떨어지는 것'을 조건으로, 국민은행이 론스타와 맺은 계약이 결국 파기된 사유와 상황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국민은행 자리에 HSBC가 들어섰을 뿐이다. 금융감독위가 "외환은행 매각과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에 따른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는 승인절차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당연한 자세다.
그렇다고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는 최종심까지 마냥 손 놓고 있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금융기관의 생명은 신뢰성과 지속발전성이라는 관점에서 책임 있는 주인을 찾아주는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최소한 1심 판결은 지켜봐야겠지만, 그 결과와 외환은행의 장래, 재매각 조건, 국내외 반향 등을 세심하게 고려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그 동안의 정책 실패를 만회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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