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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샌드위치된 한국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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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샌드위치된 한국 소설

입력
2007.09.0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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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서점에 가면 눈길을 끄는 코너가 있다. 일본소설 전시대다. 눈에 잘 띄는 자리에 공간도 비교적 널찍하다. 옆 쪽 한 켠에 있는 한국소설 코너는 외국소설과 섞여있고 찾는 사람도 거의 없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신문사에 오는 책들을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 소설은 한 주에 네댓권, 많게는 10권 가까이 쏟아진다. 애정소설이나 추리물 정도에 머물던 것이 성장소설, 판타지, SF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찾는 독자가 있고, 그 만큼 '장사'가 된다는 얘기다.

요즘 들어 중국 소설의 약진도 놀랍다. 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번역돼 나온다. 포화 상태인 일본 소설을 대체하는 '블루오션'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면 한국 소설은 갈수록 왜소해진다는 느낌이다. 가끔씩 출판되는 것도 문예지 등에 연재됐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 주류고 장편소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기사를 써주고 싶어도 건더기가 없어 안타까울 정도다.

문예계간지 가을호들이 일제히 한국 문학의 현주소를 다룬 것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지금 한국 소설에서 거론되는 비판은 "읽을 만한 게 없다" "상상력이 없다" "장편은 없고 단편만 난무한다" 등으로 뭉뚱그려진다.

한 마디로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독자와의 소통을 포기한 자폐적 언어"라고 젊은 작가들을 몰아치고 있다.

그 동안 한국 소설은 거대담론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분단과 6ㆍ25, 독재정치, 노동착취와 같은 테마는 우리 문학을 살찌운 자양분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몰락과 남북화해, 민주화로 상황은 달라졌다.

1980년대 한 일본 소설가가 "한국 작가들은 글을 쓸 소재가 많아서 좋겠다"며 부러워했다는 농 반 진 반의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거대담론이 사라진 후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게 한국 소설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분석은 타당해 보인다.

일본도 1960년대 전공투 사건 이후 이데올로기가 사라져 침체를 겪었지만 작가들의 오랜 고민과 모색을 거쳐 새로운 부흥기에 접어들었다. 일본 소설이 리얼리즘과 본격문학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다양한 넓이와 깊이를 가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밝고 재미있게 서술하는 기법이 탁월해 젊은 독자들의 구미를 끈다. 그러면서도 스토리와 구성은 흠 잡기 어려울 정도로 탄탄하다.

개혁 개방이후 새로운 사회상에 눈뜨고 있는 중국 작가들의 활기찬 기세는 놀라울 정도다. 착실히 다져진 기본기에 특유의 입담과 표현력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매력이다. 여기에 대륙의 웅대한 스케일과 호쾌한 서사는 그들만이 가진 자원이다.

우리 문단도 어떻게 하면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 심각히 고민할 때가 됐다. 작가들이 현실을 삭여서 독자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를 자신만의 방법론으로 고민해야 하는데 젊은 작가들은 그런 점이 부족하다.

농촌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사회 양극화 등은 탈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여전히 치열하게 다뤄져야 할 화두다. 작가들이 고민할 대상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외면하는 게 더 큰 문제다.

현실에 굳건히 발 디디면서도 새로운 상상력을 촉발시키려는 노력은 한국 소설의 새 지평에 닿을 것이다.

이충재 부국장 겸 문화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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