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모(27)씨는 성에 일찍 눈을 떴다. 신체 발육이 빨라 12세에 초경을 했으며, 고교 2학년 때 첫 성 경험을 했다. 첫 경험 후 고교 졸업할 때까지는 또 다른 성 경험을 하지 않았고 대학 재학 중 다시 성생활을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성생활을 했고, 별다른 피임을 하지 않아 세 번 임신하고 모두 인공 유산했다.
자유로운 성생활 때문인지 평소에도 냉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냉 색깔이 붉어지면서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해 산부인과를 찾게 됐다. 기본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돼 정밀 검사한 결과 자궁경부암 1기로 판명됐다. 미혼이라 자궁을 보존하면서 자궁 경관을 대부분 제거하고, 전이를 막기 위해 양쪽 골반과 대동맥 임파절을 절제하는 수술을 했다.
자궁경부암은 이처럼 성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 경험이 전혀 없는 수녀에게선 자궁경부암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첫 경험을 한 나이가 어릴수록, 상대가 많을수록 자궁경부암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여러 여성과 성 관계를 가지는 남성과 성생활을 할 때도 자궁경부암 발병 위험이 커진다.
자궁경부암에 성생활을 주목하는 이유는 주로 성생활로 전염되는 인유두종(人乳頭腫) 바이러스(HPV)가 주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피임약 장기 복용, 흡연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자궁경부암은 다른 암 검사와 달리 간단해 몇 분이면 끝나고 결과도 거의 정확하다. 검사법으로 HPV검사(93%의 진단율)와 세포진 검사(60~80%의 진단율), 질 확대경 검사, 조직 검사 등이 있다. 한인권 HL클리닉 원장(여성건강학회 회장)은 “HPV검사와 세포진 검사를 병행 실시하면 자궁경부암 진단율이 95~100%로 높아진다”고 말했다.
HPV검사는 HPV의 DNA를 고밀도로 배열해 둔 유리기판 위에 검체(자궁경부 세포)를 반응시켜 HPV 감염여부를 판독하는 방법으로 각 22종, 19종의 HPV를 동시에 검사할 수 있다.
세포진 검사는 자궁경부 세포를 세포 채취용 솔이나 주걱에 묻혀 암 전 단계에서 미리 포착하는 방법이다. 통증도 거의 없고 검사법도 간단하고 비용도 1만원대로 저렴하다.
질 확대경 검사는 콜포스코프라는 확대경을 통해 자궁경부 점막 표면을 4~15배까지 확대해 관찰하는 방법이다. 자궁경부를 크게 확대해 관찰하기 때문에 어느 부위에 이상이 있는지를 비교적 정확히 잡아낼 수 있다.
조직 검사는 암이 의심되는 부위에서 조직을 떼어내 표본을 만들어 현미경으로 진단하는 방법이다.
치료법으로는 암 세포가 자궁경부 상피층에만 머물러 있는 상태(1기)라면 암 부위를 원추형으로 도려내는 원추절제술을 시행한다.
최근 광역동 화학시술법이라는 비수술적 치료법이 개발돼 좋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 시술법은 포토겐이란 약물을 주사해 암 세포와 조직이 광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 뒤 레이저의 특수 파장으로 유산소를 발생시켜 암 세포를 죽인다. 원추절제술과 광역동 화학시술법 모두 자궁 기능을 보존하므로 치료한 뒤에도 임신할 수 있다. 그러나 원추절제술은 광역동 화학시술법보다 자연 유산될 확률이 높은 것이 단점이다. 광역동 화학시술법은 비용이 비싸고 한 달 이상 직사광선을 피해야 하는 등 번거롭다.
폐경이 됐거나 더 이상 임신하지 않아도 되는 여성은 자궁을 모두 들어내는 단순 자궁적출술을 시행한다. 이 수술은 자궁경부와 자궁체부를 들어내는 수술이지만 여성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난소는 그대로 두기 때문에 여성성을 잃지 않는다. 또한 성생활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질은 보존돼 있어 성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다.
자궁경부암이 2기(암 세포가 자궁경부를 벗어났지만 골반 벽까지는 퍼지지 않은 상태)라면 자궁, 난소, 난관을 모두 들어내는 광범위 자궁적출술을 시행한다. 암 세포가 주변으로 많이 퍼져 있고 덩치가 큰 경우(3기)와 암 세포가 골반 벽을 벗어나 주변 다른 부위나 장기까지 침범했다면(4기) 방사선과 항암 치료를 주로 한다.
<도움말=분당차병원 김승조 명예원장>도움말=분당차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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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기자 dkwon@hk.co.kr
■ 암을 말한다/ 정기검진통해 조기 발견하면 완치 가능
고교 동창생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지방에서 홀로 계신 어머니가 갑자기 질 출혈이 심해 난생 처음 병원을 찾았다가 자궁경부암 3기로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치료 시기를 놓쳐 방사선과 항암제 치료를 했지만 3년이나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평생 병원 출입을 하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겼지만, 자궁 건강에 소홀히 해서 돌아가시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고령층과 35세 이전의 젊은 여성에서 자궁경부암이 많이 발병하고 있다. 이는 자궁경부암 검진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데다 젊은 여성의 성생활이 과거보다 빨라진 탓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20여 년을 지냈지만 당당히 진료실에 들어와 본인의 증상을 얘기하는 여성환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인 자궁에 대해 정작 여성들 자신은 놀라우리만치 무지하고 관심없는 게 현실이다.
여성들이 자궁에 문제가 있어도 부끄러워해서 아직도 산부인과를 찾기를 꺼리다가 자궁을 상실하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많은 병원과 의사가 여성 환자들이 부끄럼을 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의료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기만 하면 자궁경부암은 자궁경부세포검사로 조기에 이상 현상을 발견할 수 있어 암으로 악화되기 전에 완치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자궁경부암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지난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암을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3.3%가 자궁경부암을 지목했다. 자궁경부암을 유방암 위암 폐암 대장암 간암 갑상선암보다 더 두려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궁경부암이 빈발하는 30~40대 여성 응답자의 3명 중 2명이 자궁경부암을 잘 알지 못하고 별로 급하지 않은 질환이라고 생각해 정기 검진을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자궁경부암은 산부인과에서 정기 검진을 받으면 조기 발견할 수 있어 완치가 가능한데 정보 부족과 오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연간 2,000명에 달하는 여성이 사망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행이 여성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최근 자궁경부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우리나라에서도 판매 승인된 것이다. 생명과학계와 의학계의 커다란 이정표가 된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이 국내에 도입된 데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가슴 뿌듯하다. 여성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자궁경부암을 완전 퇴치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흡연하지 않아도 폐암이 생기고, 간염을 앓지 않아도 간암이 생기지만,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 없이는 절대 앓지 않는다.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접종하면 성 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HPV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 자궁경부암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예방 백신이 도입됨에 따라 어느 연령대부터 접종할 것인 지, 백신 값은 어떻게 정할지,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어느 정도까지 이뤄져야 할지 등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도입으로 어린 여학생이 어머니와 손잡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내게 할말을 기대해 본다. “선생님, 저 자궁경부암 예방할래요. 예방주사 놓아주세요!”
/박종섭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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