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니스가 또다시 이형택(43위ㆍ삼성증권)이 써나가는 새 역사에 신바람을 내고 있다. 이형택은 2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US오픈 3회전에서 영국의 자존심 앤디 머레이(19위)를 3-1(6-3 6-3 2-6 7-5)로 누르고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2000년 US오픈 4회전 진출 이후 생애 두 번째 메이저대회 16강의 쾌거다. 이형택은 4일(한국시간) 니콜라이 다비덴코(4위ㆍ러시아)와 8강 진출을 다툰다. 이형택은 경기 뒤 <테니스코리아> 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꿈만 같다. 결혼 후 안정이 됐고 아이들을 낳고 더 열심히 하게 됐다”면서 “2000년 US오픈 16강 피트 샘프러스 전은 내 생애 가장 잊을 수 없는 경기였고 오늘 이 자리가 있게 해준 계기였다. 다비덴코는 훌륭한 선수지만 한 번 해볼 만 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테니스코리아>
이번엔 ‘신화’가 아니다
7년 전 이형택이 US오픈 16강에 올랐을 때 한국 테니스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세계랭킹 182위가 일으킨 ‘대반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숙미를 풍기는 노장 이형택의 이번 16강행은 말 그대로 실력이었다. 지난 해 6월부터 꾸준히 투어대회에 참가해 성적을 낸 이형택은 약 1년 만에 100위권 바깥에서 세계랭킹 36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US오픈을 앞두고 몸상태도 최고로 만들었다. 대회 개막을 한 달여 앞두고 북미에서 잇달아 열린 각종 오픈 대회에서 3차례 연속 8강에 오르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이형택은 첫 서브 성공률에서 64%로 머레이(52%)를 앞섰고 네트 접근 공격 성공률이 75%에 달할 정도로 노련한 경기 운영을 했다.
16강 진출자 중 최고령자
한때 세계 테니스계를 호령했던 피트 샘프러스(36ㆍ미국)는 한국 나이로 32세가 되는 2002년에 은퇴를 선언했다. 이형택은 바로 그 나이에 ‘제 2의 전성기’를 꾸려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US오픈 16강 진출자 중 최고령자가 바로 이형택이다. 77년생인 호주의 스테판 쿠벡(63위) 정도가 비슷한 연배일 뿐 20대 초중반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머레이와의 3회전은 2시간45분간의 대접전이었다. 특히 마지막 4세트에서 이형택은 5-2로 앞서고 있다가 5-5 듀스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하지만 20세의 팔팔한 머레이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며 체력 싸움에서도 이겼다.
8강 너머 4강으로
생애 두 번째 메이저대회 16강에 오른 이형택은 이번 대회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16강전 상대인 4번 시드의 니콜라이 다비덴코(러시아)만 넘는다면 최대 4강까지 노려볼 수 있다. 다비덴코를 꺾고 8강에서 만날 상대는 제임스 블레이크(6위ㆍ미국)-토미 하스(10위ㆍ독일)의 승자. 메이저대회 우승 경험이 아직 없는 해볼 만한 상대들이다. 4강까지 오르면 ‘황제’ 로저 페더러(1위ㆍ스위스)와 맞붙을 전망이다. 주원홍 삼성증권 감독은 “16강에서 맞설 다비덴코는 앞선 선수들보다 수준이 한 단계 높은 선수”라면서 “이 경기가 가장 고비다. 여기만 넘기면 8강 이상의 성적도 기대할 만하다”고 말했다.
한편 여자단식 2번 시드의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는 32강전에서 세계랭킹 30위 아그니스카 라드완스카(폴란드)에 1-2로 덜미를 잡혀 탈락했고 17번 시드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도 빅토리아 아자렌카(벨기에)에 1-2로 패했다. 페더러는 205㎝의 장신 존 이스너(미국)를 3-1로 누르고 16강에 올랐다.
김기범 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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