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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6> 대만대사관 재산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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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26> 대만대사관 재산 처리

입력
2007.09.0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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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회의에서 권 대사 말씀을 듣고 보니 서로의 입장 차이가 심하고 좀 먼 것 같으며 수교조건이 성숙하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측에서 시간이 필요하면 기다릴 수 있다."

장루이지에(張瑞杰) 대사는 오후회의에서 이렇게 강경발언으로 압박해왔다. 우리의 제기사항을 더 이상 밀고 나갔다가는 중국의 원칙적 입장의 벽에 부딪혀 수교회담이 연기 또는 결렬될 것을 직감했다. 침이 마르고 속이 타는 것을 느끼면서 해명에 나섰다.

우선 우리가 제기한 6가지 사안에 대한 중국의 답변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즉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 것 ▲북한 일변도 정책은 지양하고 남북한 동등한 관계 발전을 약속한 것 ▲한반도 비핵화를 분명히 반대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 ▲그리고 중조(中朝)우호협력조약에 관한 사정변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을 평가하고 앞으로 한중 관계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만에 대해 제기한 문제는 전제조건이 아님을 밝히고 다만 중국측의 해명을 요청한 것이며 아무런 전제조건 없는 수교가 우리의 기본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나의 해명에 장 대사도 그것이 수교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오해를 풀었다.

그러면서도 대만문제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지금까지 못 들었다며 ▲관계단절 ▲조약철폐 ▲대사관 및 영사관의 철수 ▲대만대사관 재산의 중국이전 ▲정치적 교류(공식왕래) 중단 등 5개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중국측은 이날 처음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대만대사관 재산을 자국정부에 넘겨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 측의 입장을 밝힐 것은 다 밝혔고 해야 할 얘기도 다 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바로 이 한계점에서 우리의 입장을 밝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온 훈령의 마지막 카드를 꺼낼 시점이었다.

대만과의 외교관계 단절, 대사관 및 영사관 철수, 조약철폐 등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중국측 입장과 상충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내 대만대사관 재산 처리문제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강행하기 어려운 법적 절차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당장 확답을 줄 수 없는 사안이지만 충분히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전체 중국인을 대표하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승인함'이 한국의 입장임을 전했다. 이어 대만관계를 비공식관계 중 최고의 수준으로 유지하고 정상회담을 통한 수교발표에 동의한다면 한국측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임을 인지함'이라는 표현을 수용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

중국측은 대한민국의 입장을 알게 됐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장 대사가 다시 물었다. "한ㆍ대만은 최대한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며, 수교문제를 정상회담을 통해 선포하고 해결한다면 중국측 입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내가 대답했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문제와 남북한에 대한 대등한 관계발전 유지는 중국측이 이미 밝혔으므로 상기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중국측이 고려한다면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측은 '최고수준의 비공식관계'의 의미를 물었다. 이에 "중국측이 제시하는 원칙문제를 받아들일 때는 (대만과는) 비공식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미 중국측 입장을 수용했으므로 그 입장에 충족되는 최고수준의 관계를 우리가 알아서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자국의 공식적 입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리의 발언을 높이 평가하고 원칙적 문제 해결은 두 나라 관계 정상화의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서술 상의 '인지'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앞으로 토의하자고 토를 달았을 뿐이다. 한중수교가 실현된 다음 한국과 대만간 비공식관계 유지 방안으로 민간차원의 경제, 무역, 문화관계 유지에 이의가 없지만 최고의 비공식관계 유지 문제는 토론을 하자고 제의해왔다.

오후 4시30분 큰 고비를 넘겼다. 잠시 쉬고 난 뒤 장 대사는 드디어 우리의 입장을 사실상 수용하는 중대한 발언을 했다.

"간단, 명확히 말하면 총원칙에서 좋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첫째, 한국측은 대만문제에 대한 중국측의 원칙적 입장을 받아들였다.

서술의 뒷부분에서 우리의 희망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다시 토론할 수 있다. 둘째, 대만과 민간관계에서 최고수준의 비공식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공식왕래를 중단하는 차원에서 말했다. 셋째, 정상회담을 통한 수교의 발표형식은 상부에 보고하겠다."

나도 화답했다. "땅 문제 빼고는 다 분명해진 것 같다." 이 단계에서 한중 수교교섭은 사실상 우리 페이스로 타결되고 있었다. 명동의 대만대사관 땅은 당시 시세로 평당 1억원이 넘는 노른자위로 3천 평 가까이 되었고 화교학교 부지까지 포함하면 약 5,000평에 달했다.

중국으로서는 꼭 찾아야 할 보물덩어리였고 우리에게는 수교를 위해 미리 준비해 보자기에 잘 싸서 간 선물이자 '바게이닝 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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