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十匙一飯)’의 마음으로 남 모르게 베푸는 게 정상인 기부문화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남에게 보여주는 ‘전시성’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2일 보건복지부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공동모금회)에 따르면 2003년 이후 공동모금회가 접수한 기부실적을 분석한 결과,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기부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기부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는 각종 지표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우리나라의 기부액은 전세계 주요 국가 중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미국의 기부금 모금액이 2003년 4조114억원에서 지난해 3조6,000억원으로 감소하거나 일본의 증가율이 8%에 머문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은 1,382억원에서 2,177억원으로 57.5%나 늘어났다.
그러나 전체 기부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4년까지만 해도 개인 기부금 비율은 22.5%에 달했으나, 2005년 16.9%로 하락한데 이어 2006년에는 16.1%로 주저 앉았다.
이같은 개인 기부금 비율은 세계공동모금회 45개 회원국 평균(69.5%)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며,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대적 기부문화가 확산돼 있지 않은 중국(2003년 20%)보다도 낮은 것이다. 모금회에 따르면 미국(75%), 캐나다(55%), 일본(70%), 싱가포르(81%), 홍콩(90%) 등 기부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주요 국가의 개인 기부금 비율은 우리보다 평균 5배 높았다.
개인 기부가 급감하는데도 전체 기부 규모가 급팽창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심화하고 있는 경기 양극화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개인은 체감경기의 악화로 기부 여력이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세계 시장에서 큰 돈을 벌어들이는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미지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기부 규모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기업의 기부는 2004년 1,027억원으로 전체의 77.5%였으나 지난해에는 1,456억원으로 83.9%까지 비율이 높아졌다.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는 연말 모금 비율이 2004년 54% 수준에서 2006년 73%로 급증한 것도, 기업들이 연말에 집중적으로 기부를 하는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개인 기부 감소의 또다른 요인으로 공동모금회의 소극적 활동을 거론하기도 한다. 한 관계자는 “자동계좌이체(CMS)를 이용하면 개인도 손쉽게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데, 모금사업을 주관하는 공동모금회가 사업에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한국의 기부문화가 정상화하려면 소수ㆍ고액 기부 대신 다수ㆍ개인 기부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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