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교외에 살고 있는 태미 이글스톤씨 부부는 지난해 초 이웃 주민들이 주택 대출금을 갚지 못해 하나 둘 씩 집을 비우는 것을 보고서도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대출을 받지 않고 집을 매입했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비어 있는 집들이 늘면서 이글스톤씨 부부는 야간에 거리에 나서기가 겁이 났다. 쌍둥이 딸들도 밤이면 무섭다며 보채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글스톤씨 부부가 이사를 결심하고 집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주거 환경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아무도 집을 보러 오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최근 집을 10만 9,000달러(약 1억원)에서 9만 9,000달러(약 9,300만원)로 10% 내렸지만 단 한 통의 문의 전화도 받지 못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위기 이후 미국의 도시 인구가 줄어 들고 주거 환경이 나빠지는 등 미국의 소도시와 마을이 유령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 뉴욕 타임즈의 최근호 보도다.
미 통계청에 따르면 미국에서 집 주인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은행 압류 주택의 건수가 지난해 120만 건으로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이 수치는 올해에는 대공황 이래 최고치인 200만 건으로 치솟을 전망이다. 62가구 가운데 1가구가 은행 압류 주택으로 전락한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현상은 주인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마을과 소도시 전체에 연쇄적으로 피해를 일으킨다. 일단 집값이 떨어지면 은행의 융자조건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집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해 사업을 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이래저래 경기가 위축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집을 사는 것이 ‘떨어지는 칼날을 잡는 느낌’이라며 꺼리는 상황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메이플 하이츠시 당국은 최근 시립 수영장 두 곳을 폐쇄하고 경찰과 소방 인력을 대폭 구조 조정했다. 체납액이 늘어나는데 따른 세수(稅收) 감소를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도시의 주거 환경은 더욱 나빠졌고, 이는 집값을 더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도시에서 볼 수 있던 이런 현상은 이제 로스엔젤레스 같은 대도시로 번지고있다. 한때 최고 50만 달러를 호가하던 할리우드의 한 콘도는 최근 15만 달러에 팔렸고 65만 달러를 호가하던 주택이 이제는 45만 달러에 내놔도 보러오는 사람 조차 없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일 “주택 대출을 저리 대출로 바꾸려는 집 주인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법안을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위기 타개에 나섰지만 이미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 미국인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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