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인질사태 수렁에서 헤어나면서 다양한 평가와 반성이 나온다. 사회와 정부가 귀담아 들을 게 많지만, 장래 지침으로 삼기에 쓸모없는 말도 적지 않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딜레마적 상황이었던 만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엉뚱하게 빗나가는 논란과 반성은 오히려 경계할 일이다. 사회 전체가 아둔하여 미리 대비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 헤매고 나서도 올바른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구제 불능이다. 무엇보다 어색한 것은 인질 테러와 타협하지 않는 '국제 원칙'을 어긴 후유증을 먼저 걱정하는 논리다.
■우선 그런 원칙부터 이론으로나 실제적으로 확립된 게 없다. 미국 이스라엘 러시아 등 힘을 앞세운 국가 행보를 일삼아 흔히 인질 테러 대상이 되는 나라들이 스스로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국제사회가 이를 충실히 좇는 듯 하지만, 겉으로 내세우는 정책 또는 구호에 머문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나라가 열심히 인질 구출을 위한 협상과 타협을 모색한다. 다만 소리 소문 없이 일을 진행하고, 막대한 몸값 등 대가를 치르고도 어떤 원칙도 양보하지 않은 양 시침 떼거나 둘러대는 것이 우리와 아주 다르다.
■이런 타협이 인질 테러를 부추겨 더 큰 피해를 낳는다는 주장도 근거 희박한 가설에 불과하다. 국제 인질 테러는 어린이 유괴와 같은 단순 모방범죄가 아니다. 애초 몸값을 노리거나 그게 유일한 타협 조건인 경우에도, 인질 테러를 유발하고 부추기는 근본은 외세 개입 등 국제정치 역학이 복잡하게 얽혀 극단적으로 험악한 환경이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타협 불가'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외세 개입 등이 근본 원인임을 숨기고, 인질 테러를 전쟁행위나 정치투쟁이 아닌 반인륜 범죄로 인식시키려는 의도다.
■그러나 뒷날 우려되는 인명 희생을 막기위해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인질의 석방 협상을 회피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인명을 정치적 이해와 목적의 제물로 삼는 점에서 인질 범행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마저 있다.
이렇게 보면 역시 우리 사회와 정부가 함께 반성할 것은 해외 파병이든 선교든 국가와 민간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앞 다퉈 열 올리면서도, 우리보다 해외 지식과 경험이 훨씬 앞선 나라와 사회의 지혜를 배우는 데는 형편없이 게으른 습관이다. 이걸 깨닫지 못한 채 시끄럽게 다투는 것은 모두 쓸모없거나 해로운 짓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