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기자실 통폐합에 대한 언론계의 전면적 반발에 예의 되받아 치기에 나섰다. 그는 어제 PD협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이례적으로 참석, 예정 시간을 40분 이상 넘기며 언론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했다.
대통령은 언론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우선 언론이 “독재정권의 입 노릇을 하고, 그 사람들 좋아하는 말만 하고 사실과 다른 거짓말,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를 일방적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그야말로 일방적이고 비뚤어진 시각이다. 과거 독재정권에 이용된 데 대한 언론의 자괴감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거꾸로 거센 탄압 속에서 한 마디라도 진실과 정의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노력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의 중앙 정치무대 진출 계기가 된 20년 전의 ‘6월 항쟁’도 다름아닌 박종철 사건 보도에 기댄 바 크지 않았던가.
대통령은 또 기자실 통폐합을 둘러싼 정부와 언론의 대립을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개혁을 하려고 했더니 편을 갈라 싸우던 언론 전체가 다 적이 되어, 편들어 주던 진보적 언론까지도 일색으로 조지고 나선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언론도 변화와 개혁의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정부 정보에 대한 기자들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시도가 언론개혁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대통령은 더 이상 본질을 비틀지 말아야 한다. 백 번을 양보해 부분적 개혁 관련성이 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에 맞게 언론 자신에게 맡길 일이지, 정치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들이 직접 주무르겠다는 생각이야말로 5공식 발상이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임용과정에 청와대의 변양균 정책실장이 관여하고,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이 뇌물 비리에 관련된 의혹에 대해 “깜도 안 되는 의혹이 춤을 추는 것은 (언론이) 부풀린 때문”이라는 인식도 국민 상식과 너무 거리가 멀다.
대통령은 방송 종사자를 기자와 PD로 쪼개는 ‘편 가르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언론 보도와 기자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낸 것과 달리 “PD연합회에 한국사회의 희망이 있다”고 추켜세운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기자들이 오라면 안 가고 PD가 오라면 간다”고 했다. 사회와 언론에 대한 편 가르기가 소용 없자, 세부적 편 가르기에 나선 것인가.
바로 전날 48년 만에 전국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이 모여 반대성명을 냈을 정도로 심각한 쟁점인 기자실 통폐합에 대한 대통령의 옹고집에 질리지 않을 수 없다. 참 대단한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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