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35ㆍ자영업) 박주현(30ㆍ안양시립합창단)
“이거 어떻게 꽂아요?”
결혼 3개월차, 시골 부모님 댁에 휴가 갔을 때다. 시골 모기가 극성이라 방안에 모기향을 피우게 했더니 아내가 물었다. 맙소사, 모기향(두 개가 코일형태로 얽힌 것)을 분리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들고서는 철심(모기향 스탠드)을 어디에 꽂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1남2녀의 장녀임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집안 일에 대해서 너무 몰라 근 10여 년 간 자취를 해온 나로서는 답답하게 생각해오던 터에 마치 카운터 펀치와도 같은 질문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여태껏 모기향을 한 번도 피워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모르는구나’ 하면서 포기가 되는 심정이었다. 그 때 이후 나는 그녀를 ‘공주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올 초 교회(기쁜소식 일산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약간의 위기(?)를 넘긴 후 오랜 독신 기간을 달래듯 3개월 만인 5월 결혼에 골인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다섯 살 연하의 아내를 맞는다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졌지만 더군다나 맨 첨 만날 때 나의 직업은 그야말로 백수였다. 사업을 한답시고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생활 시작한지 근 한 달이 다 되어갈 때였다. 반면 그녀는 피아노를 전공한 시립합창단의 반주자, 소품 겸 악보 하나 끼고 어딜 가나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대접받는 사람이었다. 당연 그녀 집쪽에서 내가 눈에 찰 리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물론 믿음이 강하신 장인 장모님은 ‘겉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목사님의 뜻을 헤아려주셨고 정말 거짓말처럼 순조롭게 결혼에 이르렀다.
하나님이 이끌었다는 믿음으로 짧은 연애기간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결혼하기 전까지 한 번도 제 손으로 식사를 차려본 적이 없으며 음악과 예술 등을 빼놓곤 고교 1등급 내신에 장학금 받고 대학을 다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기 분야 외엔 관심이 없었다. (참고로 난 늘 등수를 뒤에서부터 세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뿐아니라 아내의 전공과 레슨 문제로도 몇 번을 다투었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 아내에겐 그저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이었고, 알아서 척척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나의 결혼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아내가 보기엔 내가 ‘마마보이’였고 내게 아내는 그야말로 ‘공주’였다.
한 번은 크게 다툰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정말 사소한 문제를 속에 품고만 있다가 큰 싸움이 되었던 것이다. 목사님께서 크게 염려하시며 나를 불러 조언을 해주셨다. 내 생각(세상의 기준)을 따를 것이 아니라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고.
지방과 서울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녔고 이일 저일 안 해본 것 없으며 정치랍시고 한 때 국회의원 후원회에도 나갔던, 잡초처럼 살아온 나와 온실 안에서 곱게 자란 아내. 서로 너무 다르게 자랐지만 그래서 더 귀하게 생각하고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내 기준이 아니라 아내의 기준에서, 그리고 남편의 기준으로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얼마 전부터는 모기향 사건의 충격(?)으로 아예 아내를 ‘공주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아내를 여왕으로 모시면 남편은 왕이 된다’는 말이 생각 나 내심 기대를 했는데, 아내의 반응은 이랬다.
“공주님, 이불 속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오, 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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