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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장편 '추사' 출간…'신필' 아닌 개혁정치가 추사의 삶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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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장편 '추사' 출간…'신필' 아닌 개혁정치가 추사의 삶 담았죠

입력
2007.08.3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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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말미에 추사는 거대한 붓으로 하늘에 큰 원을 그린 후 그 속으로 날아가기를 염원하며 숨을 거둡니다. 도입부에서 추사가 평생지기 초의 스님에게 보낸 편지엔 하늘천(天)과 글자꼴이 닮은 없을무(无)자가 있죠. 우주의 시원인 하늘로 돌아가 무화되는 것, 이것이 추사의 삶과 예술이 추구한 궁극이었습니다.”

소설가 한승원(68)씨가 조선 후기 서화가이자 문인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삶을 다룬 장편 <추사> (전 2권ㆍ열림원 발행)를 출간했다.

그는 조선 시대 ‘문화계의 마당발’ 초의 선사의 생애를 그린 <초의> (2003)를 필두로, 정약용의 둘째형이자 실학자인 정약전과 통일신라 명승 원효를 각각 주인공 삼은 <흑산도 하늘길> (2005) <원효> (2006) 등 일련의 역사 인물 소설을 내놓고 있다.

“<초의> 를 쓸 때부터 초의 스님의 지기였던 추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한씨가 이번 소설을 위해 읽은 자료는 연구서, 논문, 학술잡지, 도록 등 60여 편에 이른다. 오매불망 추사만 생각하다보니 “급기야 내가 추사가 된 꿈을 꾸면서 청나라에도 가고, 제주도에 위리안치 당하기도 했다”고.

한씨는 추사를 둘러싼 통념, 즉 ‘명문가 출신으로 시서화 모두에서 현묘한 경지에 이른, 오만한 천재’라는 외피를 걷어내고, 세도정치의 구태에 맞선 개혁적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6세 때 실학자 박제가로부터 북학(北學)을 전수받고, 24세 때 직접 청(靑)에 가서 근대 문명을 견문했던 추사는 순조의 아들 덕인세자를 지지하다가 그의 요절을 계기 삼은 안동 김씨 등 보수파의 반격으로 정치적 몰락을 맞는다.

“이 시대에 왜 이 인물을 주인공 삼아 소설을 쓰는가에 대한 당위성이 내 작업의 선결 요건”이라는 한씨는 “추사를 주저앉힌 정파는 오늘날 개혁 세력을 공격해 죽이려 드는 이 땅의 어떤 거대한 보수집단을 닮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의 고갱이는 ‘정치’가 아니라 ‘예술’이다. 추사가 50대 중반부터 11년 간 겪은 유배 생활은 그가 절대 고독 속에서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중요한 기간이란 것이 작가의 시각이다.

추사는 유배 시절부터 불교 사상에 심취하고, 불후의 서화 <세한도> <불이선란> 등을 탄생시킨다. 한씨는 “추사가 말년에 쓴 봉은사 판전(板殿ㆍ경전 판각을 저장하는 곳)의 현판을 보면 일찍이 서예로 두각을 나타냈던 5, 6세 무렵의 서체를 닮았다”며 “이는 그가 세상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자재한 삶을 살면서 복잡다단한 생애를 단순함의 경지로 승화시켰음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양자로 들인 장남과 서자인 차남 사이에서 느끼는 아버지로서의 고뇌는 추사를 입체적 인물로 부각시킨다.

한씨는 “문장을 비롯한 소설적 장치 하나하나가 현대 소설을 쓸 때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최근 작품들을 역사 소설이라 칭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면서도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1997년부터 고향인 전남 장흥에 내려가 ‘해산토굴’이란 당호의 시골집에서 집필에 전념하고 있는 그의 차기작 역시 역사 인물을 주인공 삼은 작품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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