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문학을 국제관계 속에서 파악하려는 비교문학적 연구로 탄탄한 학문적 성취를 이뤘던 이혜순(65)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가 이번에는 조선시대 여성 지식인의 정당한 자리매김을 화두로 던졌다.
다음달 정년퇴임을 앞두고 <조선후기 여성지성사> (이화여대 출판부)를 펴낸 이 교수는 “조선후기 여성 지식인들의 지적성취는 남성중심의 담론에서 독자성이 인정돼지 않았다” 며 “이들의 주체적 사유방식과 공통적인 문제의식을 밝혀냄으로써 당대 여성 엘리트들의 지식세계를 관류하는 내적인 통일성을 찾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조선후기>
‘지성사’ 라 하면 통상 ‘사상사’ 이지만 당시 여성들에게 체계적 교육이 허용되지 않은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에서의 ‘지성’ 의 의미는 다소 포괄적이다. 사상, 관념, 의식, 심리 혹은 그 지향성까지 포함하는 지식계층의 넓은 의미로서의 지적재산을 포함한다는 것.
이 교수의 탐색은 18세기 전반의 인물인 김호연재(1681~1722)의 여성 수양론에서 19세기 중반의 김경춘(?~?)의 문학비평 등 다양한 인물을 아우른다. 그는 모두 7명의 인물을 다뤘는데, 이들은 그동안 기존의 문학사나 유학사상사에서 파편적, 산발적으로 언급됐다.
최근에야 문학사인 <한국문학통사> (조동일)의 개정판, <조선의 여성들> (박무영 외ㆍ2006) 정도에서 주목받았을 정도다. 이 교수는 “비록 ‘사상’으로 이름 지을 만한 것은 없었다 해도 이들은 뚜렷한 담론을 형성하거나 그 단초를 제공했다”며 “그것은 뚜렷한 여성성리학적 흐름과 여성실학적 흐름을 형성했다” 고 말했다. 조선의> 한국문학통사>
책에 따르면 심성(心性), 수신(修身) 등을 다루는 성리학적 흐름에는 김호연재의 여성수양론-임윤지당(1721~1793)의 성리사상-강정일당(1772~1832)의 예론 등이 해당된다. 이들은 남녀의 차이가 교육의 불평등에서 기인된다는 시각을 공유하며 여성의 주체성을 자각한다.
임윤지당은 당시 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인간과 동식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논쟁) 논쟁에도 뛰어들었다. 그는 “요 순 주공 공자 안자 맹자와 같은 성인의 본성을 나도 가지고 있으니, 안자가 배운 바를 어찌 나라고 배우지 못하겠는가” 라며 인간의 평등성, 남녀간 동류의식을 강조한다.
음식을 만들고 아기를 낳고 집을 짓는 듯 실용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여성실학의 대표주자는 <태교신기> 를 쓴 이사주당(1737~1821)과 <규합총서> 의 저자 이빙허각(1759~1824)이 꼽힌다. 규합총서> 태교신기>
이사주당은 자신이 직접 아이를 생육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을 남겼는데 “태를 기르는 어미는 자기 스스로 할 뿐만이 아니라 온 집안 사람이 항상 거동을 조심하여 할 것” 이라며 여성에게만 감정절제를 요구하는 기존의 태교론에 비판을 가했다.
술 음식 길쌈 의료 등에 대한 기록인 <규합총서> 는 강렬한 지적욕구, 경험존중, 박람강기(博覽强記)의 기록정신 등 당시의 실학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으며 소소한 일상경험을 생활과학적지식으로 전환시킨 지적 성과물이라고 이 교수는 평가한다. 규합총서>
한국최초의 여기자인 최은희씨의 차녀이기도 한 저자는 “책에서 거론된 여성 지식인들은 유학자들의 편향된 해석에 의해 여성들에게 부과된 잘못에 문제를 제기한 인물들” 이라며 “여성이 쓴 여성대상 담론 뿐 아니라 남성의 여성관련 담론에 대한 연구와 병행하는 폭넓은 탐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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