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벨기에 루벵 가톨릭대 얀 드 크케르 명예교수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대 역작인 모나리자가 ‘고지혈증(高脂血症)을 앓고 있는 30대 뚱녀였다’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피하지질이 쌓여 비정상적으로 부어 오른 왼손, 눈가의 붓기 등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또 여자의 경우 보통 30~35세에 고지혈증이 많이 발병하는데, 모나리자의 나이도 그쯤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샤방한’ 미소로 유명해진 모나리자가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아서 생기는 고지혈증을 앓은 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고지혈증은 중장년 남성병이라는 기존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40세 이전 조기 폐경 여성이나 폐경기 전후 여성은 남성보다 고지혈증 발병 위험이 높아 각종 심장혈관 질환에도 노출돼 있다.
매년 9월 4일은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정한 ‘콜레스테롤의 날’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중년 건강에 있어 콜레스테롤은 영원한 숙적이다. 특히 폐경 전후의 여성은 남성보다 콜레스테롤의 위험에 더 노출돼 있다.
■ 폐경 전후 여성, 남성보다 더 위험
고지혈증은 혈액 속에 있는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등의 지질(脂質)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진 상태를 말한다. 특별한 증상이 없어 ‘침묵의 질병’이라고 불리는 고지혈증은 고혈압, 흡연, 당뇨병 등과 함께 심근경색, 뇌졸중, 동맥경화 등 심각한 심장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고지혈증 원인인 콜레스테롤은 나이가 들수록 체내에 증가하는데, 보통 남자는 20세부터 50세까지 증가하고 그 이후는 약간 감소한다. 반면, 여자는 20세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지만 여성 난소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으로 인해 남자보다는 낮은 수치로 폐경 전까지 유지된다. 에스트로겐은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 콜레스테롤과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 콜레스테롤의 분비를 조절해 동맥경화를 예방하기 때문에 폐경 전에는 고지혈증 위험으로부터 어느 정도 안전하다.
하지만 여성호르몬 분비가 갑자기 감소하기 시작하는 폐경 이후,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줄면서 고지혈증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동맥경화와 심장혈관 질환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70대에 들어서서는 남녀간 차이가 없어진다. 또한 치료 경과도 좋지 않아 남성보다 더욱 위험해 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실제로 최근 탤런트 사미자씨의 심근경색과 가수 방실이씨의 뇌졸중 또한 폐경 이후의 고지혈증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고지혈증으로 인한 심장질환 중 상당수는 전조 통증이 전혀 없이 갑자기 발병한다. 전조 증상이 없는 심장질환은 젊은 사람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남자보다 여자에게, 폐경 이전보다 이후에 더 많이 발생한다. 이런 사람은 경고 사인도 없이 갑자기 심장혈관 질환이 발생하므로 전조 통증이 있는 사람보다 사망률이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
■ 식이요법과 운동으로만 부족
이처럼 고지혈증 발병 위험이 높은 여성의 경우 폐경기 전후에 식사조절이나 운동을 통해 반드시 콜레스테롤 정상치를 유지하고 고지혈증을 조기에 예방, 치료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적당한 양의 식사를 통해 비만을 피하고 표준 체중을 유지하면서 특히 과일과 채소, 잡곡류를 충분히 섭취하면 활성산소를 억제해 고지혈증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또, 매일 30분 이상 운동을 적당히 하는 것이 중요하고 금연과 절주는 기본이다.
실제로 식품에서 콜레스테롤 섭취를 50% 줄이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25%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내에서도 콜레스테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건국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김현중 교수는 “지방간, 동맥경화, 고지혈증, 당뇨병 등을 앓는 사람이 가급적 콜레스테롤 함량이 낮은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며 “하루 섭취 권장량은 300㎎ 이하이나 상태가 심각한 사람은 하루 200㎎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식품 중 콜레스테롤 함량은 소의 골, 생선 머리 등 동물의 뇌 부위, 달걀 노른자 명란 등 알류, 콩팥 간 등 동물의 내장 부위 순서로 높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려면 포화지방이 많이 든 식품(쇠기름, 돼지기름, 닭 껍질, 버터 등)의 섭취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식사조절이나 운동만으로 콜레스테롤 목표수치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콜레스테롤은 음식으로부터 섭취되는 것보다 간에서 합성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식이요법을 통해 조절하는 것만으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다. 이 경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정상 수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스타틴계 약물은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됐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심장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밝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크레스토, 리피토, 바이토린 등이 대표적인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여성 호르몬이 남녀차?나타내는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에 한때 폐경 여성에게 여성호르몬을 투여하면 고지혈증을 완화시켜 심장혈관 질환을 예방하는데 유용할 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 결과, 호르몬 대체 용법이 폐경기 전후 여성의 심장혈관 질환 발생률 및 사망률을 낮추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호르몬 대체 요법은 심장질환 예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폐경기 증상이 너무 심해 생활에 지장이 많거나 골다공증이 심해 뼈가 잘 부러지는 경우에만 전문의와 상의해 사용해야 한다.
<도움말=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성지동 교수,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김경수 교수>도움말=삼성서울병원>
■ 꼭 알아야 할 콜레스테롤 용어
△콜레스테롤
체내에 있는 지질(脂質)의 일종으로 우리 몸의 세포막과 담즙산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이다. 담즙산이 없으면 지방이 소화되지 않아 매일 설사를 하게 된다. 또 콜레스테롤은 여성ㆍ남성 호르몬 등 성호르몬의 재료다. 그러나 지나치게 혈중 콜레스테롤이 높으면 혈관을 망가뜨린다. 혈액 속을 떠돌아다니다가 다른 지방성 물질과 함께 혈관 내벽에 쌓여 죽상동맥경화를 일으킨다.
△총 콜레스테롤(TCㆍTotal Cholesterol)
보통 콜레스테롤 수치는 총 콜레스테롤(TC)을 말한다. 이는 HDL 콜레스테롤과 LDL 콜레스테롤, VLDL 콜레스테롤의 합(合)이다. 보통 TC 수치로 고지혈증 유무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LDL 콜레스테롤 수치로 판단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LDL 콜레스테롤(저밀도지질단백질)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LDL 콜레스테롤은 혈액 속에 있는 대부분의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며, 혈관을 손상시키는 주범이다. 그래서 LDL 콜레스테롤이 많을수록 심장혈관 질환 위험은 더욱 높아지므로 이 수치를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HDL 콜레스테롤(고밀도지질단백질)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 콜레스테롤은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을 간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간으로 운반된 콜레스테롤은 담즙산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다시 초저밀도 콜레스테롤(VLDL)로 합성돼 온 몸에 보내진다. 이 때문에 혈관 벽이 콜레스테롤 공격에서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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